외할머니가 남겨준 사랑의 감각
가끔 외할머니가 생각난다. 귤의 하얀 실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까서, 마치 통조림에서 막 꺼낸 것처럼 말끔해진 귤을 만들어주시던 모습이다. 왜인지 그 장면은 집 안이 아니라 밖의 놀이터와 함께 떠오른다. 내가 뛰어놀다 잠시 멈추면, 할머니는 하루 종일 귤을 까다가 다 까질 즈음 내 앞에 서서 아무 말 없이 입을 벌린 나에게 귤 한 조각을 넣어주셨다.
외할머니는 끝까지 웃고 계셨다. 특별한 말도, 설명도 없이 그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그 얼굴에는 서두름도 없었고, 조건도 없었다. 존재 자체로 기다려주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소 하나에 이미 모든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시던 고추장도 늘 기억에 남는다. 너무 맛있다며 좋아하면, 언제나 내가 들기에도 버거울 만큼 큰 항아리를 만들어주셨다. 그걸 어떻게 들고 가는지 걱정되셨는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할머니는 뒤에서 내 등을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괜찮다는 듯 일부러 천천히, 평온한 걸음으로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선을 안심시키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등뒤를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감각 때문일까. 그 사랑이 문득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힘없이 무너진다. 아무런 의도도, 바람도 없이, 그저 하얀 것이 하나도 남지 않도록 정성 들여 까진 귤처럼, 말없이 주어졌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그립다는 말보다 늘 함께 있다는 말이 더 오래 남아 있다. 없어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감각처럼, 외할머니는 지금도 그렇게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