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만화의 아버지,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
현재 애니메이션 산업을 만든 사람이자 지금 산업의 문제점을 만든 원흉이기도 한 인물이다.
각자 개개인이 알아서 하던 창작 활동을 산업 시스템으로 만들었고 그로 세계적인 수익산업으로 만드는데 기여했다. 이런 위대한 인물이 산업에 끼친 해악은 무엇이었을까.
1960년대 일본의 방송국이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찾을 때 엄청 낮은 단가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 하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거장들도 보이콧을 하고 있었을 때 데츠카 오사무가 있던 무시 프로덕션이 그 작업을 맡아 기존의 초당 프레임* 수를 줄이고 직원 급여를 낮춰서 완성해 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업체들도 그 일을 맡아서 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결국엔 인건비가 낮은 한국에 하청을 주게 되었다.
그렇게 낮게 책정된 제작비와는 별개로 데츠카 오사무는 캐릭터 산업으로 손실을 메꾸고 오히려 돈을 벌었다. 사실상 본인은 피해를 보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하청들은 근로시간과 급여를 혹독하게 받았다. 지금도 프레임 한 장당 200엔(2000원)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
애니메이션은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1초에 몇 장의 이미지가 움직이냐가 더 자연스럽고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들이 더욱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 디즈니가 초당 24 프레임 (24장)이라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8-12 프레임만을 사용해서 디즈니가 훨씬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느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데츠카 오사무 장례식장에서 추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친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니메이션 계를 망쳐놓고 애니메이터의 수입을 박살내서 일본 애니메이션에 해악을 끼쳤습니다.”
생태계 교란의 문제점은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는 크몽 등과 같이 기술을 돈을 주고 직접적으로 살 수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기술에 대한 금전적 가치를 매기기 어렵다. 장인의 1시간과 초보의 1시간의 가치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듯이 금액에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사소한 것을 하더라도 그 기본기로 인한 차이가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적으로 사용되는 콘텐츠에는 그 마무리의 가치가 돋보이지 않기 때문에 굳이 장인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직원의 노동력을 갉아먹으면서 열정페이로 제작한다는 것은 진정성에 많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사례는 기득권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생겨나는 예술계 관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당연시되어오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들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 것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예술계가 좀 더 투명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