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하이패션을 보다 보면, 이제서야 미술에서의 개념이 패션에 본격적으로 접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션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로, 기능적인 측면이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라는 모더니즘의 원칙이 패션에서는 오래전부터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패션에서는 기능과 형태가 점차 분리되며, 개념적인 시각화가 강조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패션에 도입되면서, 역사적 스타일을 차용하거나 재해석하는 방식이 등장했고,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패션의 기존 클리셰를 해체하고 이를 풍자적으로 재구성하는 아이러니와 패러디가 빈번하게 활용되었으며, 고급문화와 대중문화가 뒤섞이면서 브랜드 간의 계급적 구분도 희미해졌다. 또한, 지리적·분야적 경계가 흐려지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 스타일이 혼합되고 절충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패션에 새로운 디자인 가능성을 제시했고, 건축에서 영향을 받은 미니멀리즘 패션이 등장하면서 미적 요소뿐만 아니라 실용성과 기능성도 강조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패션의 ‘해체’는 형태와 기능의 분리를 더욱 극단적으로 가져왔다. 형태는 점점 개념적인 기하학적 구성이나 추상적인 형태로 변화했고, 기능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패션의 다양성은 직업과 신분을 구분하는 ‘ID’처럼 세분화되었고, 비슷한 취향을 공유하는 집단들이 군집하면서 더욱 뚜렷한 취향의 분파가 형성되었다.
예전의 아방가르드는 단어 자체의 뜻처럼 전위 부대 역할을 하며, 스스로를 희생하고 후대에 귀감을 남기는 존재였다. 하지만 현대의 아방가르드는 마치 단단한 철갑을 두르고 돌격하는 모습에 가깝게 보이기도 한다. 개념적 패션이 확산되면서, 단순한 기능을 넘어 미학적, 철학적 가치로 진화하는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