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오랜 세월 동안 누군가의 요청이나 특정 목적에 의해 제작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기록과 장식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작품은 사진처럼 구체적인 형태로, 혹은 권력자의 명예를 높이는 장식적인 요소로 자리 잡으며, 자연스럽게 주문제작(커미션) 형태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이런 커미션 중심의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의 개인적 시각과 내면이 드러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 바로 사실주의(Realism)다. 사실주의는 왕이나 귀족, 교황의 초상화나 역사적 사건을 그리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일반인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는 특정 의뢰 없이도 자신이 보고 느낀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작가들의 혁신적 시도였다.
사실주의의 도래는 예술가들이 대중의 취향에 맞춰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에서 벗어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그 안에 자신의 독창적인 시각을 담는 자유를 허용했다. 이는 마치 보정된 카메라 앱을 사용하는 대신 날것 그대로의 사진을 찍고, 그 안의 매력을 발견하려는 시도와도 비슷하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에서 대중성을 중심으로 하던 기존의 방향에서 벗어나, 작가 개인의 기법과 스타일, 그리고 독창적인 컨셉이 더욱 중요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대중성이 희미해지고 작품이 점점 소수의 특정 취향을 가진 관객이나 컬렉터를 대상으로 하게 되는 결과도 낳았다.
결국 커미션이 많은 작가는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스타일을 발전시키는 데 제약을 받는다. 반면, 사실주의적 작가는 자신만의 견고한 스타일을 가질 수 있지만, 이를 이해하고 지지해줄 관객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예술가들이 대중성과 개인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커미션에서 사실주의로의 변화는 예술이 단순히 누군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의 시각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표현의 장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변화는 예술이 더 이상 대중의 취향에만 의존하지 않고, 작가와 관객이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에도 이 변화는 예술의 본질과 방향성을 고민하게 하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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