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하나의 존재로 볼 수도 있고, 특정한 직업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이 시각은 결국 예술가를 사회 구성원으로 바라보는가, 아니면 창작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가의 문제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는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예술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권하윤 작가는 작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아픈 부분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가 이러한 기억을 어떻게 이해하고 보관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변화는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속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이 작업은 출발했다.
예술가 역시 사회 속의 개인이다. 하지만 예술가라는 직업적 정체성을 갖게 되면, 그 영향력과 역할은 달라진다. 사상가나 사회운동가처럼 직접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예술가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안에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하며, 대중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예술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국가나 사회의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이 가지는 힘은 강요나 지시가 아니라, 내면의 변화를 유도하는 데 있다. 다만, 이러한 역할이 모든 예술가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나 가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술은 인간의 다양성이 총합된 표현이다. 따라서 예술가의 목적과 방향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회적 질문을 중심으로 하는 예술에서는, 그 어떤 활동보다도 예술가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며, 예술이 사회에서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높은 차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