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후보에 오른 권하윤 작가가 VR을 매체로 선택한 이유를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1950년대 북한이 남한을 대상으로 조성한 선전마을 ‘모델 빌리지’를 예로 들며,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과 이를 바라보는 관람자의 관계를 탐구하고자 했다. 이는 곧 작가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며, 관객이 작가가 구축한 세계 속으로 스며드는 경험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역사적 기록을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관객이 공간을 직접 경험하고 이야기의 흐름 속으로 몰입할 수 있는 방식이 필요했다. 기존 매체와 달리, VR은 공간적 경험을 통해 감각적 몰입을 극대화하며, 관객이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직접 그 순간을 체험하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특성은 감정과 기억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여기서 다시금 깨닫게 되는 점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주제를 가장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매체를 선택하기 위해 철저히 고민하고 실험한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기술적 신기함이나 트렌드 때문이 아니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가장 적합한 도구를 찾는 과정이야말로 예술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는 무수한 가능성 속에서 최적의 표현 방식을 찾아내는 과정과도 같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전제되어야 한다.
권하윤 작가는 VR을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제3자의 시선을 관객의 주관적 시선으로 전환하는 매체’로 재정의했다. VR은 단순히 보여주는 매체가 아니라, 관객이 직접 경험하고 기억을 체화하는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작가는 이를 두고 VR이 ‘주관적 시선에 대한 찬양’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매체 선택의 과정은 몇몇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한다. 프랭크 스텔라는 왜 판화를 선택했으며, 호크니는 왜 사진을 활용했고, 라우센버그는 왜 콜라주를 작업의 중심에 두었는가? 이들에게 매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작업의 본질을 구현하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VR 역시 마찬가지다.
VR은 또한 현실의 관객의 몸과 가상의 공간이 조화를 이루는 매체로서, 관객이 참여하는 순간에만 작품이 완성되는 특성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순간’이다. 기존의 시각예술이 공간 예술에 머물렀다면, VR은 이를 시간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이는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통해 기존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방식과도 연결된다. 결국, 예술의 명분이란 기존의 것에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며 의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작가는 단순히 VR이라는 새로운 매체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지닌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며 기존 예술의 경계를 확장했다. 이 과정 자체가 예술가가 매체를 선택할 때 가져야 할 명분이며, VR이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예술적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