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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데미몽드]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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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몽드(Demi-monde)란, 사회적으로 애매한 경계에 속하며, 상류층을 모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와 다른 가치관과 생활방식을 가진 계층을 의미한다.


물가가 끝없이 오르고 있다. 이제는 필요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 자체가 낭비처럼 느껴진다. 소비는 필수적이지만, 더 이상 그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다.

과거에는 귀족과 상인, 양반과 평민이 분명히 구분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상인들은 귀족의 삶을 모방했고, 단순한 물질적 소비를 넘어 그들의 태도와 습관까지 흉내 내기 시작했다. 신분의 경계는 점차 흐려졌고, 이제는 오로지 돈이 지위를 결정하는 성골(聖骨) 데미몽드가 등장했다.


패션은 더욱 화려해지고, 사교 행사는 한층 더 호사스러워졌다. 각종 행사와 공연의 개막식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서로의 복장을 모방하고, 가구와 전문 용어까지 공유한다. 한때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희미해졌다. 격식과 매너는 쇠퇴하고, 사회의 세련됨과 감성도 빛을 잃어가고 있다.


수입보다 많은 지출이 당연한 일이 되었고, 타인의 소비 수준을 따라가거나 능가해야 한다는 강박이 사회를 지배한다. ‘가치 있는 것’을 소비하는 기준이 사라진 채, 소비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사치와 과소비가 곧 성공을 의미하는 시대, 그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가장 유망하고 고상해 보였던 것들이 하나둘씩 붕괴하면서, 우리가 성공이라 믿었던 것들 역시 함께 사라진다. 지독한 인플레이션 속에서 검소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그러나 검소란 단순히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검소란, 올바른 가치를 찾아 절제하는 과정이다.


품위와 품격이 사라진 세상에서 예술적 가치를 지키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예술은 본디 사회가 가진 가장 순수한 가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데미몽드의 취향에 따라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사회적 가치는 무너지고, 진정한 의미마저 인플레이션되는 시대다.

진정한 검소란, 가치를 잃은 소비를 줄이고, 진짜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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