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 이미지에 대한 기대와 실망 사이에서
최근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만화들이 실사화되고 있다. 사랑받아온 작품일수록 실사화 소식은 큰 기대를 모으지만, 현실은 대부분 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원작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아, 성공 사례를 찾기조차 힘들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실사화란 결국 현실의 물리적 형태로 작품을 재현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시도는 종종 원작이 지닌 ‘추상성’을 구체화하면서 괴리를 발생시킨다. 특히 비현실적인 요소나 캐릭터를 현실의 틀 안에 억지로 끼워 넣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환상은 갑자기 깨지며 불쾌하거나 기괴하게 느껴진다. 결국 실사화의 가장 큰 딜레마는 ‘추상적 이미지에 대한 기대’다. 이 기대는 원작이 우리 안에 심어놓은 환상이고, 실사화는 그것을 충족시킬 수 없다. 잘 만들어도 본전, 조금만 어긋나도 혹평을 받는다.
예컨대 인간의 형태를 가진 캐릭터는 실사화에서 비교적 괜찮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 예컨대 디즈니의 원작처럼 비현실적인 존재가 현실적으로 구현될 경우, 아이들의 환상은 순식간에 깨지고 만다. 실제로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화에선 차가운 바닷속 현실이 드러나는 순간, 어린이들이 울면서 극장을 나왔다는 후기가 있을 정도다.
디즈니뿐만 아니라 일본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도 비극적이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떨어진 인지도만큼의 등가교환을 했고, <진격의 거인>은 그네 타는 어른들을 보여주며 조롱을 받았으며, <원피스>는 그저 양덕 코스프레를 영상화한 수준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디즈니의 최근 행보에 비하면 양반일 수 있다.
디즈니는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원작의 기본 정신과 정서를 무시하고 곡해한 결과물을 양산했다. 실사화란 본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며, 그 안의 철학과 미학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디즈니는 원작자와 그 세계를 사랑해 온 이들에 대한 존중 없이, 단순히 '새로운 해석'이라는 명목으로 멋대로 재구성해왔다. 작품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정치적 올바름과 마케팅 포인트에 집중하며 주인공의 인품조차 무시하는 태도는 단지 ‘이력 한 줄’을 위해 예술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메시지를 강조한다며, 정작 중요한 정체성과 서사는 왜곡하거나 배제하는 이중적인 태도는 진정성 없는 정치적 연출일 뿐이다. 무엇보다, 창작자 본인이 자신이 하는 이야기의 본질을 모른 채 책임도 지지 않는 방식은, 영상이라는 이름의 예술이 아닌 ‘시각적 쓰레기’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물론 이러한 실사화 작업에는 수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이 담겨 있고, 그 헌신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철학과 원작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순간,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디즈니를 보면, 과거 아름답게 다듬어진 이야기들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그 가치를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허탈하고 아쉽기까지 하다.
결국 실사화의 목적은 환상의 세계를 현실로 끌어와 공감과 이입의 폭을 넓히는 데 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건 얼마나 잘 현실화했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추상적 정서와 낭만을 얼마나 잘 지켜냈느냐는 것이다. 실사화란, 본질적으로 '현실로의 전환'이 아니라, '환상의 보존'이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