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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가 취향을 만든다]

by 김도형

우리는 순위를 참 좋아한다. 숫자로 나열된 목록은 선택을 유도하고 감정까지도 바꿔놓는다. 요즘은 이상형 월드컵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콘텐츠가 줄 세워지고, 넷플릭스를 켜면 장르별·국가별로 ‘이달의 콘텐츠’가 매뉴얼처럼 제시된다. 일본은 애니메이션의 제2 전성기를 맞이했고, 한국은 드라마의 본고장처럼 여겨진다.


문제는 이 순위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반응 감도까지 조절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매운맛에 익숙해지자 스코빌 지수가 점점 올라갔듯이, 콘텐츠의 수용 강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는 후속 창작물이나 패러디에도 영향을 미치며 결국 순위는 취향을 만들어낸다. 대형 플랫폼은 취향을 추천하는 수준을 넘어, 때로는 강요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건 순위 밖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번거롭지만, 추천을 무조건 수용하기보다 스스로 의심하고 고르는 태도는 점점 더 중요한 미덕이 된다. 장르 구분도, 감도에 대한 평가도 결코 객관적이지 않다. 확증편향에 기댄 줄세우기 속에서 진정한 성취는, 순위 밖에서 스스로 발견한 ‘나만의 명작’을 만나는 데 있을 것이다.


#순위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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