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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것들]

시뮬라크르 향한 예술가의 시선

by 김도형

‘시뮬라크르’라는 말은 예술과 철학에서는 익숙하지만, 대중에게는 어딘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도 수많은 시각예술가들이 이 단어에 오래 머물고, 반복해서 다루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시뮬라크르(simulacrum)는 말 그대로 ‘진짜를 흉내 낸 가짜’를 뜻한다. 단순히 복제된 것을 넘어서, 가짜가 너무 정교하고 매끄러워서 사람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믿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 한 마리의 소가 있다고 하자. 그 소를 보고 누군가가 그림을 그린다. 또 다른 사람은 그 그림을 보고 인형을 만든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 인형을 보며 말한다. “소는 원래 저런 거야.”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보다, 익숙한 이미지 속 가짜가 더 진짜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사의 모사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점점 진짜로부터 멀어진다. 광고, SNS, TV, 영화 속에서 소비되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현실을 대신하고, 점차 우리는 ‘진짜’를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시대에 들어섰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희미해졌고, 현실보다 이미지가 더 강한 영향력을 갖는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말하자면 시뮬라크스 속에 잠긴 사회다.


시뮬라크르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아니며, 때로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져버린 가짜다. 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실은 흐릿해지고, 결국 사람들은 그 가짜를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


예술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는 과연 진짜일까. 혹시 진짜라고 믿는 것들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이미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작가들은 그런 의문을 작업 속에 드러내고,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진짜를 향해 묻는다.


시뮬라크르를 다룬 예술은 ‘진짜를 찾고 싶다’는 갈망과 ‘진짜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좌절 사이에 머문다. 그 모순과 흔들림을 견디는 태도 안에서, 예술은 다시 시작된다.


#시뮬라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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