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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먼저 기억하는 향수]

by 김도형

여름철, 구름이 해를 살짝 가리는 흐린 날이면 펜탁스 카메라로 찍은 사진처럼 차갑고 검은 초록빛, 약간 푸른 기운이 감도는 수풀이 눈에 들어온다. 그 순간, 어김없이 일본의 어느 여름날이 떠오른다.


여행을 즐기던 시절, 때때마다 경험했던 온도와 습도, 바람과 햇살, 색감과 분위기, 그리고 그 공간의 냄새까지 생생하게 각인된 몇몇 장면들이 있다. 지금은 일상의 감각들이 그 기억 위를 덮고 있어 억지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만, 문득 비슷한 기류를 마주할 때면 그날 그 장소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한, 차원을 초월한 감각이 밀려온다.


기억이 머릿속이 아니라 피부로, 감각으로 먼저 떠오른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어떤 냄새나 습도, 공기의 밀도까지 되살아날 때면, 마치 가본 적 없는 곳에 대한 향수처럼 그립고 짠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이가 부모 품에 안겨있을 때,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해도 포근함과 부드러움, 편안함이 온몸에 스며드는 그 감각처럼. 감각이 먼저 기억하는 것이 바로 향수 아닐까.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속에서 익숙한 감정을 느낀 순간,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여행의 기억이 내게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감사하게 느껴졌다.


#감각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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