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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해방과 예술의 가치 관계]

by 김도형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노동이 해방되면서 직업의 정의와 사회 구조 전반이 변화하고,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인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하면서 생긴 잉여 생산물이 사회 전체에 분배되어, 개인이 노동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노동에 가치를 부여해 왔다. 노동 그 자체뿐 아니라, 노동으로 파생된 성취와 결과를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예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인적 기술과 많은 공이 들어간 작품은 더 쉽게 감탄을 자아내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한국에서 특히 ‘사진 같은 그림’이 높은 평가를 받아온 것도 노동의 흔적을 귀하게 여긴 사회적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오랫동안 노동의 본질적 가치를 존중해 온 사회는 여전히 기본소득과 같은 개념에 대해 반감을 가지며, 그 필요성과 방향을 두고 논란을 벌인다. 이런 태도는 노동의 해방과 예술의 가치 관계에도 연장선상에 있다. 예술품 또한 오랫동안 작가가 들인 시간, 정성, 기술력, 그리고 매체의 고유성에 가치를 매겨 왔고, 개념미술 이후로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노동의 흔적’은 상업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나 더 이상 노동이 필수적이지 않은 시대가 도래하면서, 예술품의 가치 평가 기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창작 과정보다는 그것이 시장에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는가, 얼마나 강한 경험을 제공하는가가 중심이 되고 있다. ‘무엇을 만들었는가’보다 ‘어떤 반응을 얻었는가’가 더 중요해진 것이다.


결국 노동 해방 이후의 예술은 실물 소유보다 경험의 강도와 몰입감, 사회적 반향으로 가치가 평가된다. 작품 자체보다도 그것이 형성하는 네트워크의 크기와 질, 그리고 작품을 둘러싼 문화적 대화가 새로운 자산으로 기능한다. 특정 예술 작품이 어떤 철학이나 세계관, 사회적 운동에 기여하는지, 즉 메타적 의미의 중심성 또한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된다. 나아가 노동 해방으로 인해 ‘노동의 희소성’ 대신 블록체인, 계약서, 소셜 신뢰도와 같은 ‘디지털 희소성’이 새로운 근거로 부상할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노동이 해방된 사회에서 예술의 상업적 가치는 더 이상 물리적 노동의 흔적에 의존하지 않는다. 감정, 경험, 사회적 연결, 기술적 인증이 새로운 핵심으로 떠오르며, 예술은 물건이 아닌 영향력, 데이터, 기호적 자산이라는 무형적 차원에서 발전해 간다. 이제 우리는 ‘노동의 가치’가 아니라 ‘참여의 밀도’, ‘공유의 속도’, ‘영향의 강도’로 예술을 소비하고 소유하게 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예술을 단순한 물건에서 기호적 자산, 경험의 구조, 사회적 코드로 재정의하며, 예술 그 자체뿐 아니라 예술을 둘러싼 사회와 시장의 관계까지 근본적으로 다시 쓰게 만들 것이다. 노동 해방 이후의 예술은 과거보다 덜 고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복합적인 방식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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