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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울뿐인 이상을 그리다]

by 김도형


메타가 퍼스널 슈퍼인텔리전스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수많은 인재들이 한순간에 애플을 떠나 메타로 향했다는 사실은, 지금 이 기술이 지닌 상징성과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정말 타당한 일인가? 나는 이것이 일종의 유토피아적 사고방식과 닮아 있다고 느낀다. 모든 것이 조화롭게 연결되고, 수많은 변수가 사전에 분석되고 통제된 상태. 겉으로 보기엔 문제 없는 세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현실의 복잡성과 불균형이 지워져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학교 내 커뮤니티에서 출발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처럼, 기술의 출발은 소박했을지 몰라도 그 확장에는 복잡한 정치적·경제적 목적이 얽혀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기술들이 처음부터 어떤 숭고한 이상을 품고 시작된 것이라 보지 않는다.


과연 지금처럼 현실적 조건이나 정보 격차가 극심한 사회에서, 최첨단 기술을 모두에게 동일하게 제공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더 나아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자본을 투자하는 이들이 과연 아무런 조건 없이 그런 기술을 보편화하는 데 동의할까? 자본주의의 기본 전제가 ‘차등’과 ‘경쟁’이라면, 그 속에서 평등한 기술의 제공이란 결국 허상에 가깝다. 나는 그런 모델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으리라 믿기 어렵다.


오히려 나는 거대 IT 기업이나 AI 산업의 최고 책임자들이 먼저 슈퍼인텔리전스의 대상이 되길 바란다. 이상만을 좇으며 마치 새로운 조물주라도 된 것처럼 굴기보다는, 먼저 스스로 그 기술의 실험대에 올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슈퍼인텔리전스가 주어진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발상은, 영화 돈 룩 업 속 어리석고 근거 없는 낙관주의처럼 보일 뿐이다.


이상은 필요하지만, 허울뿐인 이상은 오히려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


#허울뿐인이상 #슈퍼인텔리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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