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난 우리 아이의 세상에 이입하려다 보니, 내가 살던 세상과 단절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접하지 않는 곳에서 SNS는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것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그만큼 조바심이 나고 뒤처진다는 불안도 더 깊어졌다. 의도적으로 SNS를 멀리하려 애썼지만, 이제는 외부와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버린 만큼 완전히 배제하기도 어려웠다.
도태된다는 두려움에 아이를 품에 안고 며칠 동안 하루에 책 한 권씩 읽기도 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책만은 나를 지켜줄 거라는 종교 같은 믿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엇이라도 했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을까. 분명 책은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자기 증명을 위한 독서는 생각만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번에 배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쓴다. 원래는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도, 어느새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처럼 여겨진다. 특히 열심히, 꾸준히 살아온 사람일수록 자신이 쌓아온 자취를 지키기 위해 그 증명을 멈추지 못한다. 강박은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근면성실한 사람에게는 크나큰 구속이 된다. 나 역시 근면과 성실을 스스로의 증명으로 삼아 살아왔고, 그것이 지탱해 온 삶의 방식이었기에 잠시라도 내려놓는 것이 죄처럼 느껴졌다.
잠시 멈추는 순간, 다른 사람들은 이미 저 멀리 달려가 있을 것 같아 불안하고 잠조차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매일 이렇게 되뇌인다.
세상 사람들은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들에게 더 호의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인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월든에 나오는 말처럼, 각자의 계절과 속도는 모두 다르다. 늘 태양을 받는 꽃과 그늘 속의 꽃이 같은 속도로 피어야 할 이유도, 같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오늘도 나는 그 강박을 바닥에 살짝 닿을 만큼만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