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어떤 일을 해내는 성취만큼이나 관계에서의 신의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왔다. 물론 모든 관계가 내 의도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더더욱 신뢰를 쌓기 위해 가끔은 무리해서 배려하거나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노력이 오히려 의도와는 다르게 전달되어 관계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신뢰는 일종의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이 지켜질 때 관계는 단단해진다. 우리는 누구와의 관계든 크고 작은 신뢰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갈등이나 실망이 발생하는 지점은 대부분 감정을 약속하려 할 때 생긴다.
감정을 약속한다는 건 “나는 항상 당신을 이렇게 생각할 거야”,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야” 같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감정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 흐름은 환경과 상황, 시간에 따라 변한다. 감정을 약속한다는 건 결국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일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감정이 아니라, 행동을 약속하라고. 예를 들어 “언제든 연락하면 도와줄게”, “어떤 상황에서도 최소한 이 기준은 지킬게”와 같은 행동의 약속은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책임의 영역 안에 있다. 이런 약속은 관계에서 불필요한 죄책감이나 실망을 줄이고, 신뢰를 쌓는 실제적인 방법이 된다.
이 원칙은 연인, 가족, 친구는 물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지킬 수 없는 감정은 약속하지 말자. 그리고 서로에 대한 행동으로 신뢰를 증명하자. 그것이 오해와 기대 없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계의 본질적인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