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나는 최근 GPT를 일종의 토론 도구로 활용하는 방식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마치 각 분야의 박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정제된 정보만을 들을 수 있는 지식의 장이 열린 듯하다. 압도적인 양의 지식과 경험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고압적이지 않고,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게 설명해줘”라고 요청하면 언제든 차분하고 인자한 어조로 다시 설명해주는 존재와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특히 예술처럼 개념이 난해하고 오해가 얽혀 있는 분야에 대해, 대중의 입장에서 질문을 던지고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GPT는 큰 도움을 준다. 현명한 질문 하나가 수많은 답을 끌어내고, 그 답들은 다시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이처럼 지식의 확장성이 끝없이 이어지는 구조는 내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하지만 이 도구가 가진 가장 큰 맹점도 동시에 분명하다. 바로, 무한히 생성되는 정보를 누가 정리하느냐는 문제다. 토론에서도 사회자가 필요하듯, GPT와의 대화에서도 사회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내용을 정리하고, 중심을 잡고, 편향되지 않도록 중재하는 태도가 없다면, 결국 정보는 쌓이기만 할 뿐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수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가지만, 그것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단지 속독한 책처럼 내용이 흩어지고 산만해질 뿐이다. 집중력을 잃게 되고, 오히려 과잉된 정보는 내 안의 사고 구조를 마비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인공지능이라는 이 훌륭한 대화 상대를 마주할 때, 사용자 스스로가 질문자이자 사회자, 인터뷰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한 순간마다 내용을 정리하고, 요약하고, 때로는 반문하며 다른 관점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태도로 임할 때, 인공지능은 단순한 정보 생성기를 넘어 진정한 학습 도구이자 창조적 사고의 동반자가 된다.
누구나 각자의 방식으로 이 장을 운영할 수 있다. 모두가 손석희가 될 수 있다. 야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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