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겉으로 보기엔 민주적이고 아름다운 이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바둑의 고수였던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에 패한 후 “이제 누구도 인간에게 바둑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이 말은 예술의 본질적 방향을 흐리고, 예술이 지녔던 고유한 긴장감과 가치마저 희석시킨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오늘날 예술은 ‘대중화’라는 이름 아래 넓은 범위로 확장되어 왔다. 이 다양성과 접근성은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예술가가 감당해야 할 가치에 대한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기도 했다. 예술과 지성은 본래 ‘사물의 진실’을 밝혀야 할 책임을 지닌다. 그러나 지금 예술가는 그 책임 대신 ‘인기’와 ‘선호도’라는 시장의 언어에 복속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 시대는 모두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그 안에서 ‘가치’라는 단어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가 유일한 가치가 되어버리고,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적 완성도나 철학적 깊이에 대한 요구는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보편화다. 여기서 보편화란 모두가 예술을 소비할 수 있는 접근성이 보장되되, 그 안에서 창작의 깊이와 책임은 여전히 유지되는 상태를 말한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착각은 오히려 예술을 평평하게 만든다. 진정한 다양성이란 각자의 자리에서 주연, 조연, 단역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면서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는 이 구조적 다양성까지도 이해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자기 표현의 정당성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은 그저 허용의 결과물이 아니다. 예술이 보편적으로 사랑받기 위해서는, 다시금 그 본질에 대한 책임감과 각자의 위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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