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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사조 변화의 인과와 역사적 배경

by 김도형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의 유럽 미술은 단순한 양식 변화가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 인간 인식의 방식이 급격히 전환되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예술이 그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였다.


그 출발점에 있었던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형식미와 이상을 계승하며, 이성과 질서, 도덕적 교훈을 강조하는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사상과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이 미술은, 통일이라는 대의명분을 향해 나아가던 이탈리아 사회에서도 통합과 자긍심, 국가적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회화는 이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고전적 이상을 통해 근대 국가의 영광을 고대 문명과 연결하려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지속된 정치적 불안과 사회적 피로는 곧 이성의 이상만으로는 삶의 복잡성을 설명할 수 없다는 회의로 이어졌고, 이는 곧 낭만주의의 등장을 불러왔다. 낭만주의는 개인의 감정과 열정, 민족적 정체성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중심에 두고, 보다 표현적이고 감성적인 언어로 현실을 풀어냈다. 강렬한 색채와 역동적 구도, 이국적 상상력이 두드러졌으며, 괴테, 루소, 바이런 등의 문학적 영향은 이 흐름을 철학적·정서적으로 더욱 심화시켰다. 이탈리아에서도 낭만주의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민족 감정과 연결 지어 표현하는 예술적 매개로 작용했다.


하지만 낭만주의의 감정적 고양과 이상주의는 산업화가 본격화되며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도시화, 계급 갈등, 빈곤과 노동 문제 같은 구체적인 사회적 이슈들이 예술 앞에 새로운 과제를 던졌고, 이에 따라 예술은 감정의 해방보다 현실을 직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했다. 이러한 전환 속에서 등장한 사실주의는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시도로, 이상화 없이 관찰과 경험에 기반한 시각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베리즈모(Verismo)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어, 프랑스의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남부 이탈리아의 정서와 지역적 현실에 뿌리를 둔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했다. 사진의 발명 역시 이러한 사실적 재현의 경향을 가속화하며, 미술이 감각과 감정의 도구에서 점점 더 객관적 현실 인식의 수단으로 변모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에 이르는 미술 사조의 변화는 단순한 형식의 전환이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신고전주의가 이성과 고전적 이상을 통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면, 낭만주의는 그 틀을 깨고 감정과 상상력의 해방을 추구했으며, 사실주의는 더 나아가 그러한 감성조차 걷어낸 채, 구체적 현실과 사회 구조를 직면하고자 했다. 결국 이 흐름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의 역사적 맥락과도 긴밀히 맞물리며, 예술이 시대정신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드러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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