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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호출하는 예술, 역사를 지우는 방식]

by 김도형


최근 동시대 예술에서 샤머니즘이 주요한 소재로 다시 등장하는 현상은, 단순한 문화적 유행을 넘어선 ‘뿌리 찾기’의 열망과 관련이 있다. 예술가들은 현시대의 불확실성과 단절된 감각 속에서 현상의 이유를 당대 안에서는 더 이상 찾기 어려워졌고, 그 답을 과거의 원형적 세계관이나 공동체 기억 속에서 탐색하려 한다. 이는 곧 예술가들이 고고학자나 사학자의 영역에 발을 들이며, 자신의 시선으로 과거를 재구성하고 현재를 해석하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예술가가 역사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자신의 시선을 더해 재구성하는 것이, 과연 언제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보다는, 때로는 사실과 거리를 두거나 변형을 가하면서 특정한 관점을 강조하는 방식은 문학으로 치면 논픽션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실은 허구에 가까운 표현처럼 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진실을 말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현실의 맥락을 흐리거나 왜곡된 인식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지키고 보존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 아이러니하게도 그 대상을 더욱 빠른 속도로 소비하고 소진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샤머니즘을 호출하는 작품들이 의례나 정령의 세계를 살리려는 듯하지만, 그 맥락을 끊어낸 채 오브제로 전시될 때, 그것은 문화의 재현이 아니라 속도의 전유와 시각적 소비에 불과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경향은, 예술이 과거를 보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역사의 일부로 남고자 하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예술은 무엇을 기억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혹은 기억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무엇을 호출하는가. 이 질문은 샤머니즘이라는 소재가 동시대 예술에서 소환되는 방식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요구한다.


#샤머니즘 #역사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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