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과 비난은 한 끗 차이
‘감독’이라는 단어는 왠지 어감부터 멋있다. 카리스마 있게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OK, 컷!”을 외칠 것 만 같다. 하지만 난 달랐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자라오면서 사람들이 많은 자리는 조금 불편하다. 목소리도 작고 소심하다. 하지만 연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는 촬영장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순간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가장 첫 번째 단계이자 꼭 필요한 시나리오는 주로 연출이 작성한다. 처음 연출을 맡았을 때는 5분 정도의 간단한 영화였을뿐더러 준비기간이 길지 않아 시나리오를 개발할 시간이 매우 적었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영화의 규모가 커졌는데 그러다 보니 스태프들과 함께 시나리오의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내가 쓴 시나리오를 스태프들이 있는 공간에서 다 같이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마치 벌거벗은 상태로 밖으로 나와 시장을 활보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나도, 피드백을 주는 스태프들도 모두 서툴렀다. 시나리오를 들고 회의에 들고 갈 때마다 난 항상 처형대에 올라간 죄인처럼 느껴졌다. 모든 스태프들이 내 시나리오에 대한 단점만 이야기했고, 처음에는 '그래. 더 좋은 영화를 만들려면 개선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하나 하나 글을 고쳐나갔다. 그러나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시나리오는 점점 산으로 갔다.
그때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스태프들의 피드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촬영날은 점점 다가오지만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은 시나리오를 보며 스태프들과 나는 더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피드백은 점점 비판을 넘어서 비난으로 향했고, 내 시나리오에 대한 애정도와 자신감만 떨어져 갔다. 결국 잦은 수면부족과 큰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순간적으로 기절을 했다. 나의 첫 공황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에서 모두 걱정을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계속해서 비판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존감이 낮아질 대로 낮아진 나는 스텝들이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나를 걱정해 주는 척 하지만 이대로 작품이 엎어질까 봐 걱정하겠지?'
그 당시에 나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내 감정보다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중요했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은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피드백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진심으로 내가 이 시나리오를 위해서 피드백을 받아들인 것이 아닌, 피드백이라는 이유로 왠지 바꿔야만 할 것 같아서였다. 아무리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틀렸다고 이야기해도 나를 믿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설득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 뜻대로 시나리오가 변경되지 않으니 그 불만 쌓여 스트레스로 다가왔던 것이다. 나는 스태프들에게 진심을 말할 용기도, 내 시나리오의 문제를 진심으로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결국 스스로 스텝들을 믿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상태에서 촬영을 강행했다. 당연히 촬영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촬영장의 공기가 날카롭고 예민한 감정들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촬영하는 내내 수백 번 수천번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지만 오직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결과물을 보고 그 작품은 내가 만든 작품이 아닌 스텝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겁쟁이였다.
내가 생각하는 피드백의 방향성은 이렇다.
1. 전체적으로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감정)
2. 고쳐야 되는 부분 (비판)
3. 새로운 방안과 방향성 (아이디어)
내가 수많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사실 3번까지 가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심지어 2번에서는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더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피드백을 하지만, 종종 피드백을 하는 진짜 이유를 잊는다.
처음에는 비난만 하는 스태프들이 미웠고, 왜 아이디어를 던져주지 않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스태프들의 의견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내가 피드백과 비난을 골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 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