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탕 / 서울예술교육센터 아트포틴즈 디렉터
서아시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된 돌멩이는 규칙을 품고 있었다. 셈을 위해 돌멩이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효율적으로 표시하려 했다. 그 셈을 위한 규칙은 장치가 되고 표준을 정하며 훗날 주판이 되었고, 그 주판은 계산을 위한 보다 정교한 기계장치로 만들어져갔다. 지금이야 너무도 자연스럽게 만나는 현대의 컴퓨터는 그렇게 태어났다.
컴퓨터의 어원은 익히 알려진 대로 계산원을 가리키는 일종의 직업이었다. 물론 컴퓨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가/감산 정도의 일이 아니라 꽤나 복잡한 연산과 기하를 포함하는 계산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능력은 재능과 더불어 오랜 수련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자리를 기계장치인 컴퓨터에게 내주는 데 그리 많은 고민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이미 정해진 일인 양 받아들여졌다. 컴퓨터와 사람의 인연(?)을 극단적으로 짧게 정리하자면 그렇다. 마치 운명처럼 사람이 그 역할을 내주는 것을 비관이나 염세로 몰아갈 필요까지는 없다. 역사와 문명은 근력과 능력의 비운 곳을 채우고, 효율을 찾으며 달려왔으니 말이다.
2021년 드림아트랩이 끝나간다. 복합과 유기적이어야 완성되는 목표를 제시하다 보면 반드시 빈구석이 보이게 마련이고, 대립하는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키워드는 기술/예술/정보/배움/작동 등이 아니었을까 한다.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에 따라 상이한 목표를 포괄한다 해도 드림아트랩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로 등장한 정보나 언어가 표현의 매개를 변화시키고, 적극적으로 기술과 매체를 받아들인 예술가에 의해 표현의 다양성과 시대의 특징을 드러냈다. 이에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함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다양하다. 특정하기 힘든 모두를 대상으로 두기보다는 기준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생각했기에 랩이 형식으로 차용되었다.
이미 이 글의 시작에서 바빌로니아인이 배열한 돌멩이에서 선명한 필요를 느낄 수 있다. 필요가 불러온 도구와 매체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속력을 만들고 시스템을 변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필요로 선별할 것인지에 대한 안목이다. 2019년과 2020년에 드림아트랩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개념과 매체가 언어로 가장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Metaverse’나 ‘NFT’가 그렇다. 1980년대 초반 루카스필름 게임즈가 만든 ‘하비타트’는 게이머가 사이버 카페에 모여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린든랩의 ‘세컨드라이프’가 등장했을 때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수 있지만 단지 훔치거나 베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다. 어떤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기의 필요와 만나지 못하거나, 물리적 한계와 정보처리를 위한 환경과 도구가 없다면 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분산컴퓨팅이 블록체인을 본격화하면서 만나게 된 화폐는 사회가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를 정할 것인가에 대한 과학과 기술이 응답한 대안이거나 제안이다. 여기에 희소성이나 저작의 권리 등이 결합하면서 복제 불가능한 예술가의 본질적 표현이 디지타이징(digitizing)된다. 이 두 가지 예에서 ‘돌멩이의 필요’는 무엇일까. 소통과 가치교환에 대한 의지다.
이때 교육의 혼란은 돌멩이 사용법인가, 돌멩이를 놓기 위한 규칙을 디자인하거나 선택하는 것인가에 놓인다. 하지만 생각보다 명료하다. 필요는 배움의 동기를 만들기 때문이다. 드림아트랩에서 우리가 만난 대상은 아동과 청소년이다. 그래서 간혹 새로운 매체와 놀이를 충분히 즐기는 것을 통해서 배움이 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한 호기심과 동기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작용이 있다. 그렇다 보니 놀이에 경도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다.
인과관계의 딜레마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우리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다. 놀이를 디자인하고 놀이의 장에 아동/청소년을 위치시키는 것은 현재를 사는 아동과 청소년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구조를 만드는 것은 기획자의 일이고, 실행하는 것이 아티스트와 교육자의 일이다.
하지만 다시 컴퓨터를 떠올려 보자. 사람의 자리를 어떤 장치에게 넘겨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때 사람에겐 새로운 역할이 생기지 않는가. 사용자의 위치에서 즐거운 문화 경험 역시 중요한 한 축이라고 볼 수 있지만, 드림아트랩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는 컴퓨터에게 내줄 것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안목을 갖는 힘이 아닐까 한다. 결국 기술의 본질과 원리를 탐구하는 능동적 의지를 찾아가는 것이 가능한지 시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OK, Compu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