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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떼 시민교육팀 Feb 07. 2023

깊은 마음을 만나도록,
다른 이의 마음을 이해하도록

참여 예술(교육)가 인터뷰 ① : 김지영

김지영 시각예술가

회화, 만화, 디자인, 일러스트,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지금 여기 이 순간순간을 오롯이 충실하게 살아내고자 다양한 개인 프로젝트(‘실타래 프로젝트’, ‘꽃이 되자 연구소’, ‘나는 산책을 좋아해’ 등)를 진행 중이며 기록과 의미부여를 통해 삶과 예술의 하나 됨을 꿈꾼다. 오래 떠나있다가 다시 돌아와 살고 있는 고향 대전에 대해 갖게 된 새로운 시선을 만화 작업으로 남기고 있다.




강지웅(이하 ‘강’) : 선생님은 어떤 계기로 문화예술교육을 시작하셨나요?

김지영(이하 ‘김’) : 저는 회화랑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했고, 회화를 기반으로 작업하면서 회사에서 디자인 일도 했었는데요. 작업 활동 중에 부당한 사건을 겪으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고, 육아를 전담하게 되면서 한동안 경력이 단절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러다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우연한 기회로 2020년에 그림책을 소재로 미술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그때부터 문화예술교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강: 선생님 커리큘럼을 보면 참여에 대한 문턱을 최대한 낮추시려는 것 같았어요.

김: 저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어렵게 설명하는 걸 무척 싫어했어요. 어떻게 하면 작업의 문턱을 낮추고 표현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려운 과정을 가급적 빼고 직관적으로 재미있게 시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려고 해요.


강: 그런 방향을 추구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김: 계속 그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제 인생에서 그리는 건 너무 당연한 것이었는데요. 슬럼프를 겪으면서 작업을 하지 못하는 동안 그리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잘되지 않는다, 원래 그림을 그리기 좋아했던 나도 이런데, 원래 그림을 그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어요. 그래서 그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기를 표현할 방법은 없을까 떠올리게 되었고, 이런저런 구상을 하면서 지금 활용하는 방법들을 찾게 되었어요.


강: 고백하자면 저는 남부럽지 않은 ‘똥손’인데요. 그런 입장에서 선생님 커리큘럼이 무척 끌려요. 그런데 한편으로 억울하시지 않을까 싶긴 해요. 선생님께서 작업하시는 동안 애쓰신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김: 제가 입시 준비를 좀 길게 했는데요. 그걸로 배운 것도 많았지만 관심사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는 제약이 따라서 '이게 미술의 전부가 아닐 텐데'하는 회의감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술학원에서 일할 때 아이들 각자의 관심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쳤어요. 이 방식이 지금은 일반적인 미술교육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아서 정형화된 미술교육을 기대하시는 학부모님들의 이해를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미술에 재미있게 접근하는 방법들을 생각하고 시도해온 것 같아요.


강: 그럼 선생님께 그 재미는 뭔가요?

김: 일단 표현할 수 있다는 거죠. 말을 잘하지도 못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타입도 아닌 저에게 그림은 저를 표현하는 수단이거든요. 그래서 잘 그리고 아니고를 떠나서 누군가에게 그림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강: 저 같은 ‘똥손’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일단 “선부터 하나 그어봐라”라고 해도 선을 어디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느 정도 굵기로 그려야 할지 난처해하거든요. 선생님께서 고민하시는 지점이 그런 문제를 넘어서는 걸 도와주시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해요.

김: 그림을 그린다는 게 결국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참여하시는 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보는 작업을 먼저 해요. 수업 초반에 요즘 근황이라든가, 고민 같은 것들을 많이 이야기하면서 라포를 형성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때 저는 고민을 해결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같은 참여자로서 제가 하는 생각이나 가지고 있는 고민들을 이야기해요. 그리고 점수를 전제로 배우면서 불가피하게 미술에 대한 관심이나 의지가 꺾였던 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하려는 것은 점수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려요.


 이웃을 연결하는 구심점
 

강: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교육을 진행하신 다문화 가정과는 평소에 교류를 하셨나요?

김: 우리 아이랑 동갑인 아이가 있는 집이라는 것만 아는, 딱 인사만 하던 사이였어요. 저희 집 건너 건너편 건물에 있는 집이라서 자주 마주쳤는데, 서로 목례만 하고 아이가 있네요, 저희도 있네요 정도였어요. 외국인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대화를 한 적은 없는데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너무 컸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아이들이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이 있어서 갔다가 만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 어머님이랑 대화하면서 우리 친하게 지내요 했는데 연락처 주고받는 걸 잊은 거예요. 이 프로젝트를 신청한 목적 중에 하나가 이분하고 가까워지고 싶은 것도 있었거든요.


강: 그럼 어떻게 연락을 하셨나요?

김: 프로젝트에 선정이 됐으니까 이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연락처도 없고 좀처럼 마주쳐지지 않는 거예요. 건물은 아는데 정확한 대문 위치는 몰라서 문을 두드리기도 어려워서 편지를 써서 아이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그 집 아이에게 엄마한테 전해달라고 하면서 줬어요. 그렇게 연락이 되어서 날짜를 잡고 시작하게 됐죠.     

강: 아무래도 첫 수업 때는 긴장을 많이 하셨겠어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완전 처음 만나는 사이도 아니었으니까요.

김: 서로 눈인사만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대화할 생각을 하니 저도 영어가 유창하지 못하고 그분도 한국어가 유창한 건 아니어서 말이 잘 통할까 떨리긴 했어요.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준비한 걸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고요. 그래서 프로그램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어요.

     

수업은 세 번 하려고 했는데 일정을 맞추느라 두 번으로 하게 됐어요. 내용을 줄일 수는 없어서 세 번 분량을 두 번으로 압축했거든요. 그런데 첫 수업 때 아이가 5분 만에 이렇게 하는 거면 세 번 다 할 걸 그랬다고 해서 굉장히 기뻤어요. 수업 이후로 아이들끼리도 친해져서 서로의 집에 놀러가서 놀기도 하고요.


강: 수업하시는 동안 대화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김: 아이 어머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그분은 한국에 오시기 전에 패션 디자인을 전공해서 패션 관련 일을 하셨는데 한국에서는 맞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은 편이라고 하셨어요. 저도 경력이 단절된 적이 있어서 공감하는 바가 많았고, 그분도 저도 동네에 친구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그런 외로움도 비슷했고, 신기하게도 그분의 남편과 저의 예전 직업이 같았어요. 대화하면서 그런 공통점들을 많이 찾게 됐어요.
 

강: 지금은 그 가정이랑 가깝게 지내시지요?

김: 네, 아이들끼리도 서로 자주 어울리고, 아이 어머님하고 근황도 종종 나누고요.


강: 선생님께서 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신 목표는 충분히 달성하신 셈이네요.

김: 그분 시어머님께서 무척 좋아하셨어요. 아랫집에 사시는데, 며느리가 동네 사람 친구 만드는 걸 너무 바라셨는데 제가 첫 친구가 되었다고 제 손을 붙잡고 좋아해 주셨어요. 덕분에 시어머님하고도 가까워졌어요. 제가 주택이 많은 동네에 살고 있는데 사실 (이웃을 많이 사귀는) 꿈과 희망을 안고 이사를 왔었거든요. 정작 이사한 지 4년이 지나도록 이웃을 사귀지 못했는데 동네에서 아는 사람이 생겼다는 게 저도 너무 기뻤고요.
 

강: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갑자기 나타난 귀인 같으셨겠네요.
김: 저한테도 귀인이시죠.
 

너무 가까워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강: 말씀 듣다 보니까 선생님의 장벽이 높지 않은 수업이 동네를 만드는 구심점이 되는 활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분들까지 참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어떤 분이 참가하시느냐에 따라 수업의 분위기가 달라질 테니 그만큼 중심에서 선생님께서 맡으시는 역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버님이랑 수업하셨을 때도 이웃과 수업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을 것 같아요. 일단 수업을 성사시키기부터 쉽지 않으셨을 것 같기도 해요.

김: 한 20년 전에 제가 아빠 쪽 친척 내외분들하고 1년 정도 한 달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갖자고 해본 적이 있어요. 재료까지 다 준비했는데 아빠만 안 하신다고 가만히 앉아 계셨어요. 부부끼리 마주 보고 그려주는 시간도 있었는데, 엄마는 아빠를 그리시는데 아빠는 안 그리셔서 제가 속상해서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빠한테는 언제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일이어서 이걸 같이 하셔야 내가 먹고산다고 이야기하자고 마음먹고 말씀드렸더니 들으시자마자 자리에 딱 앉으셨어요. 작전이 먹혔다. 그래서 너무 신났어요.
 

강: 어르신들과 그림 그리는 자리를 제안하셨던 것도 흥미로워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 그림 그리는 게 좋으니까 좋은 걸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그때가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던 시기였을 거예요. 학원에서 가르치면서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해주는데, 이걸 나를 가르쳐주시고 보듬어주신 어른들한테도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이런 걸 할 테니까 다들 오시라고 해달라고 했어요. 원래 자주 모이셨는데 먹고 마시기 전에 그림 그리고 먹고 마시자고요. 그리고 재료를 다 준비해 갔는데 엄마가 엄청 좋아하셨어요. 엄마가 좋아하시는 모습이 또 동기가 된 것 같아요.
 

강: 어머님께서는 선생님 작업이나 작업 활동하시는 것에 대해서 궁금해하셨을 것 같아요.

김: 그렇긴 하셨을 텐데 워낙 간섭을 안 하시고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시는 타입이셨어요. 전시할 때 오셔서 보시라고 하면 엄마는 자주 오셨는데 전시 보는 걸 즐거워하셨어요. 엄마는 집에서 혼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셨거든요. 그래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해드리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강: 아버님하고 수업하신 얘기로 돌아와서요, 어떠셨나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던 셈이긴 하지만 단둘이 수업하시는 건 또 처음이셨던 거잖아요.

김: 첫 시간에는 롤러를 활용해서 “롤러로 이렇게 물감을 밀면 이런 모양이 나와요” 알려드리고 마음껏 롤러를 쓰시게 해드렸어요. 저는 종이를 계속 대어 드렸는데, 아빠가 어느 정도 롤러를 미시더니 “이게 내 의도대로 잘 안 나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빠 의도가 뭔지 여쭙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향을 알려드리면서 작업을 계속했어요. 그때 제가 약간 놀랐던 게 아빠가 아주 어렸을 적에 방 안에 있는 화로에 손을 데어서 손가락 두 개가 조금 문드러져 있거든요. 그래서 물감을 잘 못 집으시더라고요. 아빠 손이 그런 걸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아빠가 일상에서 이런 부분이 어려웠겠구나 싶었어요.
 
다음 수업은 색종이로 마음을 표현하는 거였는데, 아빠는 생뚱맞게 무슨 마음이냐는 반응을 보이셨어요. 아빠가 평소에 갖고 싶은 밭을 이야기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빠한테 아빠가 갖고싶어 하는 밭을 색종이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색종이를 자르고 또 조각들을 붙이는데 아빠 손이 또 너무 잘 보였어요.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는데 또 아빠가 밭을 열심히 꾸미시는 걸 보면서 내가 진짜 밭은 못 사드려도 밭을 가꾸는 기쁨을 드린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어요. 아빠가 작업하시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잘 몰랐는데 마치고는 밭에 이름도 붙이시고 “멀리 놓고 보니까 다르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빠가 평소에 마음을 절대 표현하지 않으시거든요. 그런 말씀을 하신 것도 너무 재미있었어요.
 

강: 멀리 놓고 보니까 다르다라는 말씀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대장간에서 일하실 때는 주로 대상을 가깝게 두고 보실 텐데, 선생님 수업에서 대상을 멀리 떨어져서 보신 거잖아요. 그런 경험이 없으셨다면 선생님 수업이 더욱 새로운 경험이셨을 것 같아요.

김: 미술을 배울 때 대상을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봐야 한다고 배우지만 그 경험을 아빠가 해보시도록 한 게 저한테는 되게 의미가 컸어요. 만약에 “아빠, 이런 수업이 있대요, 저랑 같이 가 보실래요?”하면 절대 안 하실 거거든요. 그런데 아빠가 일단 해보시도록 권하고 직접 경험하면서 깨달으시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강: 좋은 경험을 처음 여신 아버님이 어떻게 하면 재미를 또 찾아가시게 할까가 숙제가 된 셈이네요.

김: 아이의 이번 방학 과제에 할아버지랑 일주일에 한 번 그림 그리기를 넣었어요. 그래서 애 방학 숙제라고 하면서 아빠한테 들이밀려고 계획을 짰어요.


강: 작전을 잘 짜셨네요. 꼭 성공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가 취지와 방식도 새롭지만 평소 알고 지내는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낯설면서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가까운 사람끼리는 그 사람이 뭘 하는지는 아는데 어떻게 하는지를 직접 보거나 경험하는 것이 드물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막 벌써 쑥스럽고 뻘쭘해지고요. 선생님은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김: 제 주변에서도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인 줄은 아는데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살아내는지는 잘 모르실 거예요. 제 작업 세계 안에서는 그림에 대한 여러 작용들이 계속해서 바쁘게 일어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서 갑자기 앉아보세요, 우리 같이 그림을 그려볼까요 하는 건 너무 힘든 일이잖아요. 아마 이번 프로젝트에서 한 작업도 그냥 하자고 했으면 어려웠을지 몰라요. 그런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라고 하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사실 저에게도 진흥원의 프로젝트라는 명분이 든든했어요.
 

강: 가까운 사람들한테 작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드물잖아요. 어떤 작업을 추구하시는지나 작업하시는 과정에서 겪는 고충같은 것들이요. 하면 안 되는 건 아닌데 막상 하려면 어색하기도 하고 힘든 얘기 굳이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요. 이야기하고 싶은 분은 그게 아쉬울 것 같고,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분은 개의치 않으실 것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김: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가 진행한 수업이 슬럼프에서 벗어나던 시기에 구성한 것이었어요. 수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배경에 대한 이야기도 중간중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나한테 이런 힘든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좋았아요. 이웃집 엄마하고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많이 쌓기도 했고요. 아빠한테는 제가 힘든 내색을 잘 안 해요. 자식들이 힘들다고 하면 아빠가 엄청 속상해하시거든요. 그래서 표현을 많이 걸러서 “아빠, 이건 내가 그림 못 그릴 때도 할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정도로만 말씀드려도 어느 정도 유추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차원에서 나를 좀 알아달라는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죠.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고 또 마주한다는 것


강: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생님께서 세우신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신 것 같아요. 이번 프로젝트가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일지도 궁금해요.

김: 이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오래 준비했던 전시를 마쳤거든요. 전시를 마칠 무렵에 그다음 작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작업을 다시 하고 있지만 단절되었던 기간 때문에 기회가 잘 이어지지 않는 경우들이 있어서 그랬던 것같아요.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증명이 되든 안 되든 내 마음에 이런 힘이 있구나, 내가 이런 거 하는 걸 되게 좋아하네, 이런 자기 확신이 좀 생겼어요. 그게 저한테는 가장 큰 의미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 있었거든요. 사실 제가 부끄러움이 너무 많아서 안 가려고 했는데 그냥 일단 가보자 하는 마음으로 참석했어요. 거기서 여러 선생님들을 뵙고 하시는 작업이랑 교육에 대해 들으면서 다들 각자 계신 곳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계시고 있구나, 이런 작업을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구나, 나도 너무 겁내지 말고 계속 나아가보자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강: ‘은혜로운’ 워크숍이었네요(웃음).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함께 한다는 걸 생각하시게 되었다는 말씀이 무척 의미가 깊게 들렸어요. 이웃을 생각하면서 지금 지내시는 동네로 가셨다고 하셨는데, 앞으로 동네에서 무언가를 시도해보실 계획도 있으신가요?

김: 제가 지금 거주하는 지역에서 지낸 시간이랑 서울에서 지낸 시간이 이제 거의 일대일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이 지역으로 다시 돌아와서 지내는 동안 내가 어렸을 때 지내던 때랑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 적이 많아서 그걸 만화로 작업하고 있어요. 이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하면서 그림도 그리는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있고요. 제가 온라인으로 그림 그리는 크루 활동을 하고 있는데 온라인으로 하다 보니 지역이 달라서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는 힘들거든요. 같은 지역을 기반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크루를 모집해서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작업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구상도 하고 있어요.     


강: 슬럼프를 벗어나시는 단계에서 ‘그리는 삶이란 뭘까’하는 질문을 계속 가지고 계셨다고 하셨잖아요. 이제는 그 질문에 대한 선생님 답이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 그리는 삶이란 무엇인가요?

김: 그린다는 게 결국 표현하고 싶고 어딘가와 닿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에 모여 있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제가 그림을 그려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각자의 방향으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저는 제 삶의 방식으로 그림을 선택했고 그 안에서 나눌 수 있는 건 나누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면 되는데 거기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하는 시간이 정말 많았는데 나한테 그린다는 건 결국 살겠다는 거구나 하는 마음에 닿게 됐어요. 그 마음을 먹기까지가 되게 힘들었지만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결국 삶의 의지이고 의미구나 알게 됐어요.
 

강: 선생님께 그린다는 것이 단순히 작업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선생님 삶의 중요한 정체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표현하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문턱을 낮추시려는 선생님의 관심을 삶의 즐거움을 나누시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수업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 때 제일 뿌듯하시거나 즐거우신가요?

김: 참여하는 분들이 작업을 하면서 내면의 깊은 얘기를 꺼내실 때 가장 좋아요. 그게 결국은 작업의 목표이고, 작업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이유가 그래서이기도 해요. 만약 문턱이 높다면 그만큼 마음을 깊이 보기가 힘들어지잖아요.


강: 작업의 결과가 예술적으로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 과정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본질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특히 전문가가 아닌 분들에게는 그림의 즐거움을 경험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겠네요. 

김: 쉬운 표현을 통해서 내면의 깊숙한 이야기를 스스로 꺼낼 수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때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그냥 나랑 다르네 하고 넘기기보다는 왜 그런지 이해해보려고 하는 접점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도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꺼내 보는 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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