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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9. 그라네 미술관

프랑스


남프랑스 체류 마지막 날, 햇살 좋은 한낮에 엑상 프로방스를 대표하는 미술관, 그라네 미술관 (Musée Granet) 을 찾았다.


그라네 미술관은 이웃한 생장 드 말테 (Saint-Jean-de-Malte) 교회의 -1676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외양을 가진- 부속 수도원 건물에 1838년 개관하였다. AIX Museum으로도 불린다. 엑상 프로방스의 공공 미술관이자 해마다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모으는 곳이다.


미술관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한 사람이자 화가이기도 했던 François-Marius Granet의 이름을 따 1949년 그라네 미술관으로 명명됐다. 


도시의 부유한 사람들은 17~18세기에 걸쳐 자신의 집을 장식하는 의미에서 미술 작품을 수집하곤 했는데, 그라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북유럽과 이탈리아 사이의 가교로서의 엑상의 전략적인 위치뿐 아니라 지역 예술을 고양하기 위하여 노력한 사람이다.


그라네 미술관 @AIX-en-Provence


2000년 Philippe Meyer 경이 기부한 73점의 작품을 포함해, 6천 점의 회화와 고대부터 21세기에 이르는 조각 작품이 4천 제곱미터에 펼쳐져 있다.  


세잔의 도시답게 이곳은 그의 작품 'The Great Bather'를 포함한 10점과 앙리 마티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파블로 피카소, 피터 몬드리안 등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성인 5.5€)


그라네 미술관은 Entremont 조각상부터 렘브란트의 자화상까지 반드시 봐야 할 걸작 15점을 발견하도록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 같은 상징적인 작품을 발견하고 하단의 설명을 통해 작품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 Itinerary The Highlights of the museum. 그라네 미술관 브로슈어


2010년에 스위스의 화가이자 컬렉터이자 파블로 피카소의 친구였던 Jean Planque의 소장품 300점을 15년 동안 임대하는 조건으로,  2013년부터 인근 Chapel of the White Penitents에 별관인 Granet XXe. 이른바 'Jean Planque Collection'을 개관해 전시하고있다.


별관은 드가, 르누아르, 고갱, 모네, 세잔, 피카소, 피에르 보나르, 페르낭 레제 등 17세기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 내용도 알차다! 


그라네 미술관에서 도보 3분 거리에 별관인 Granet XXe 이 위치하고 있다. 이것이 'Jean Planque Collection'이다.

(필자는 별관이 있는지 현장에 가서 알았다. 저기 별관 있으니 거기도 보고 가세요~라고 하더라 ㅎㅎ)


[Floor Information]

본관 전시실은 크게 3개 층으로 구분돼 있다.

□ 지하 1층 : 상설. 14세기~18세기 프랑스, 북유럽 및 이탤리 회화. BC2세기로 추정되는 Entremont 상 등 고대 유물

□ Ground : 18세기~20세기 조각 작품

□ 지상 1층 : 19세기 프랑스 회화. Meyer 기부 작품들

※ 지상 1층에 있던 Cezanne room 이 지하 1층으로 옮겨졌다.

◇ Opening hours : Noon to 6 PM (10 AM ~ 7 PM during Summer)


Reception 은 1층이며 여기서 티켓팅. 오디오 가이드도 빌릴 수 있다. (한글 아숩게 없음요.)

가방은 cloak room에 맡기고 가벼운 몸으로 입장하면 된다. 별관도 영수증을 제시하면 된다.


[Masterpieces 15選]

주최 측에서 특별히 가려뽑은 15작품을 위치까지 알려주며 소개하고 있으니 이들만이라도 꼭 챙겨 보자.

폴 세잔의 The Bathers, 렘브란트의 자화상! 그리고 이곳의 주인공 같은 포스를 풍기는 앵그르의 작품 등이 인상적이다.


나머지 12번~15번 작품은 별관에 위치하고 있으며, Claude Monet의 작품, Pablo Picasso, Jean Dubuffet, Jean Planque의 작품들이다.


티켓을 끊고 ground floor에 들어서면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조각상들이 좌우로 정렬하여 관람객을 맞이한다.


Mirabeau - François Trupheme 作


오른손을 들어 어디를 가리키고 있는 이 분이 바로 미라보 영감님 되신다.

그도 한가닥 했던 인물이기에 이 엑상의 대로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왠지 느낌은 부르주아 삘 이네.

본명은 오노레 가브리엘 리게티 드 미라보 백작(1749~1791)이다.

아버지가 후작이라 부유한 가정 환경을 십분 활용해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다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해 학자, 문필가로 180도 바뀌게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국민의회 성립을 주도하고, 박식하고 달변이었기에 삼부회의 대표 인물로 활약해 1791년 국민의회 의장이 되어 정치가로 변신한다. 

귀족과 부르주아지를 대표한 인물로 (역시 내 눈썰미는~) 왕권과 민의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왕궁에 매수된 것이 밝혀져 반역자로 몰려 옷을 벗게 되고 다시 젊을 때의 방탕한 삶으로 돌아가 건강이 악화돼 42년의 짧은 생애를 마쳤다.


뭔가 고뇌하는 남자의 상


그리스 여신 같은 느낌의 조각상을 팔로 껴안고 흐느끼는 듯한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다. 

우는 얼굴인 지 잠을 자는 모습인 지 모르겠지만 그의 얼굴에 어린 감정선은 '슬픔'인 듯하다. 


곧 가장 유명한 조각 작품을 마주한다. 마스터피스 15의 7번

L'écorché - Jean Pancrace chastel 作


L'écorché는 우리말로 옮기면 '피부'. 마치 사람을 박제해서 세워둔 것처럼 살갗과 근육의 묘사가 탁월하다!

Jean Pancrace chastel은 늘 많은 작품 의뢰를 받은 18세기 엑상 프로방스의 유명한 조각가였다.


그는 비옥함의 상징인 강과 성벽으로 장식한 엑상 프로방스 마을을 곡물 시장(Grain Market)의 정면 Pediment에 조각하기도 했다.

* Pediment : 고대 그리스/로마 건축양식에 있어 건물의 정면 상단의 삼각형 부분으로 대개 박공 장식이 들어가 있다.


남성의 살갗을 벗겨낸 인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걸작으로 작품의 제목도 인간의 몸을 이해하기 위해 19세기 당시 의사와 화가들의 관심사였던 해부학(Anatomy)에서 따 온 것이다. 마치 죽어있는 사람의 신체 위에 조각을 한 것 같은 모습이기에 매우 리얼하다.

François-Marius Granet 뿐 아니라 AIX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곤 했던 폴 세잔(Paul Cézanne)도 이 작품을 보고 공부를 했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조각 작품이었다.


0층 Sculptures


그런데 조각상들을 특별한 의도 없이 무작위로 배치한 느낌. 2열 종대로 쭉 도열해있다. 공간의 제약이 있어서인지.

조각상들을 위한 공간도 그리 넓지 않다.



저 열린 문을 통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간다.

엇 그런데 어떤 벗은 남자가 그로테스크하게 누워있는 것이 아닌가.


인체 비례의 사이즈라서 더 놀랐다.


바티칸 박물관의 '라오콘 상'을 떠 올리듯 뱀에 의해 몸이 칭칭 감기며 고통스러워하는 남자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이다.

사진을 찍는 필자도 약간 민망한 느낌이었다. 중력의 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조각가였따.ㅋ


지하 1층에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유명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처음에 마주한 작품은 세잔의 작품.


세잔의 부인 초상


세잔은 마땅한 후원자 없이 15년 동안 작품 활동을 해야 했었고, 동반자는 그의 아내와 아들뿐이었다. 

하지만 그 외로웠던 기간이 그가 화가로써 성공하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엑상 프로방스에서 두문불출하며 외부의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은 채 그만의 독특한 화법을 개발한 것이었으니.

그의 나이 50세에 접어들어 다시 정통 화단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고, 그의 첫 전시는 미술 판매상 Ambroise vollard에 의해 이뤄진다. 

1904년에는 독립 화가들을 위한 Salon 전체를 그의 작품으로 장식하게 되고, 2년 후에 세잔은 AIX에서 생을 마감한다.


살아생전에 동시대의 인상주의 화가이자 그의 친한 친구였던 피사로와 모네, 르누아르보다 저평가 받았지만,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놀랍도록 평탄한 특징, 독특한 음영과 색채의 사용은 그의 사후 30년 동안 예술적 표현 방식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와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추상표현 주의자들을 비롯해, Cubist(입체파), Fauvist(야수파) 들이 바로 세잔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위 모델도 세잔의 부인으로 모델을 쓸 형편이 안돼 아내를 모델로 세운 것. 

아내의 얼굴이 참 밋밋하기 그지없다. 기존의 얼굴의 굴곡과 윤곽에 최대한 공을 들여 흠잡을 데 없이 그렸던 그림들과 비교하면 말이다.

마치 연구소에서 실험하듯 같은 인물과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리기를 반복하며 자신만의 화법을 창출하고 그 화법으로 세상을 바꿔버린 세잔의 노오력과 성취는 필자도 R&D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자 다음은 마스터피스 2번에 해당하는 세잔의 The Bathers. 목욕하는 사람들.

The Bathers - Paul Cézanne, 1895


이 그림은 화단에서 한동안 외면받던 AIX의 'The master', 세잔의 작품으로 미술관에 전시된 것으로는 첫 번째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1984년까지 미술관에 걸린 바가 없었다.)

이 그림은 Lauves의 스튜디오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그가 천착했던 '대욕장' 시리즈를 예고하는 작품.

고전적인 전통에서 영감을 얻어 여성 누드를 연상시키는 풍경으로 작품을 묘사한 것은 오로지 그의 상상력의 발현 때문.

세잔은 여기에 묘사된 언덕의 굴곡처럼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여성과 결혼하길 원했다. 이것이 작품 속에서 목욕하는 이들과 배경의 형태(shapes)와 색채(colours)가 잘 어우러지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유명한 세잔의 터치, 구조적이고 방향성이 있는 그의 붓질은 나무의 잎을 구조화한다.
- 세잔의 <색상을 그리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에서

세잔의 작품, 1875-1876


세잔이 그릴 때 사용했던 팔레트 네 개와 우측의 붉은색 잉크 자취가 남아 있는 팔레트는 세잔이 마지막 때 사용했던 것이다...

엑상에서만 볼 수 있는 유품 아니겠는가.


다음 그림을 보자.

16세기 프랑스, 목자의 숭배, 화가 미상, 1860


목자가 숭배하는 주인공을 그리기 위해 작가는 이탈리아와 플랑드르 지방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투박하게 묘사된 (양을 이고 있는) 목자와 라파엘로(Raphael)의 캔버스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처녀 그리고 어린 소년의 모습과 함께 북유럽 느낌의 붉은 광산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의 복원 결과에 따르면 상부에 있는 천사들의 그룹과 전경의 기도하는 기증자(왼쪽 하단의 난쟁이같이 작게 묘사된 인물)는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다음은 마스터피스 4번에 해당하는 작품. 카드꾼들.

The Cards Players - The Brothers Le Nain, 1635-1640


딱 보기에도 뭔가 분위기가 심상찮다. ㅎ

Le Nain 형제는 때때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어떤 부분을 누가 그렸는지 밝혀내기는 어렵다.

이 그림에서 표현한 일상의 모습은 유명한 테마를 암시한다. '다리를 꼰 채 술 마시며 카드 게임을 하는 군인'이 그것이다.


전면부 세 명의 플레이어들이 앉아 있고 한 아이가 뒤에서 이 장면을 쳐다본다. 

카라바조(Caravaggio) 화풍에 영향을 받아, chiaroscuro로 알려진 명암 대비를 통해 청년과 나머지 둘을 대비해 강조하고 있다. 

청년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눈치챈 건가?

관람객의 눈길을 붙잡는 등장인물의 행위와 점잖은 척하는 태도는 프랑스 고전주의 미술의 전형을 보여준다.


필자는 이 그림을 보고 루브르박물관에서의 그림이 떠올랐다. (물론 세잔의 카드 게임도 있긴 하지만)

Georges de LATOUR [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 @루브르 박물관


오른 편에 어수룩한 청년을 속이기 위한 한 패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ㅎ


이 밖에 다양한 그림들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은다.

앗 네이버~


비너스와 에로스 그리고 들의 전령사인 머큐리가 같이 앉아 있다. 에로스의 질문에 머큐리가 검색 결과를 설명해 주는 것일까? ㅎ



위 그림은 따로 메모를 해두지 않아 기억할 수 없는데, 화가는 강조할 대상을 빛의 명암 효과로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누운 이는 형, '에서'의 추적을 피해 도망하던 야곱, 우측에 서있는 이는 야곱과 씨름 한 판을 벌이게 되는 천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빛을 활용한 측면에서 카라바조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파리는 미술관 어딜 가나 북적댔는데, 여기는 쾌적하고 여유로워 관람하기에 좋았다.

그라네 미술관 지하 1층

위 작품도 작가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림 자체보다 액자의 화려함에 더 눈이 간다.

이쯤 되니 필자도 그림 보는 눈이 좀 생겨서 그림 대상과 내용이 대강 파악이 되긴 한다.

가운데는 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이고 그녀를 감싸고 있는 세 여인은 삼미신(三美神)이 틀림없을 것이다.

초록색 휘장의 굴곡 표현과 깔고 앉은 붉은색, 자주색의 천 조각의 굴곡진 묘사가 훌륭하다.


자 다음에 멋진 작품이 등장합니다.

Portrait d'homme - Pieter paul Rubens


17세기 바로크 화단을 대표하는 벨기에 태생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의 작품이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듯한 귀족 부부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각 인물이 몸에 걸친 칼, 황금 장신구와 옷의 레이스 묘사가 정말 탁월하다!

인물의 검은색 옷과 대비된 장신구가 리얼하여 손에 잡힐 듯하다!

이탈리아에서 8년간 체류하고 돌아와 그린 그림으로, 다소 침착한 느낌의 북유럽 전통해 충실히 살렸다. 


남성의 제복에 걸친 황금 장신구의 묘사를 보라. 메달에 묘사된 인물의 두상까지.


부인의 소매 레이스의 묘사와 목에 걸쳐 배꼽 부분까지 드리워진 구슬 모양의 액세서리의 묘사, 그 위에 부착된 십자가 예수의 형상.

목에 걸친 체인의 살아 있는 광택. 정말 놀랍도록 사실적인 묘사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그림. 

왜 그가 당대를 평정했던 화가였는지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아주 일부만 보여준 것일 텐데. 


자 다음은 그의 한 세대 아래 화가인, 그러나 그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던 또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본다.

그라네 미술관 마스터피스 6번 작품인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jin)의 자화상(Self-Portrait).


렘브란트의 자화상


셀피 등장 전에도 유능한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자화상으로 그리곤 했다. 

렘브란트는 작품 활동 기간 내내 자신의 초상화를 참으로 열심히 그린 화가이다. 그의 일련의 자화상이 그의 자서전이었던 셈.

인생의 후반부, 젊은 시절 성공으로 일구었던 전 재산을 거의 다 잃고, 병에 걸려 건강도 잃었지만 그에게 남아있는 건 오직 그림 그리는 것뿐.


그림 속 예술가는 간편한 화가 복장(베레모와 블라우스)을 하고 있다. 고령의 얼굴은 두꺼운 붓질과 그의 특유의 색채 사용으로 강조했다.

렘브란트의 어느 전기작가는 '그림의 덧칠이 너무 두꺼워 코의 덧칠을 떼낼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그의 굴곡진 생애가 그의 얼굴에 어려있는 듯하다.


만년의 렘브란트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분명 아름다운 얼굴은 아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그의 추한 모습을 결코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아주 성실하게 관찰했다.  
... 
이것은 살아 있는 인간의 실제 얼굴이다. 
끊임없이 인간의 표정에 내포되어 있는 비밀에 대해 보다 많은 것을 탐구하려는 화가의 꿰뚫어보는 응시가 있을 뿐이다.
서양 미술사 - 곰브리치


렘브란트의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가


곰브리치 할아버지는 동시대 다른 화가의 자화상을 보면 스냅 사진의 느낌이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 인물의 전 생애가 보인다"고 했다.

렘브란트는 조화와 아름다움보다는 카라바조가 그랬듯 '진실과 성실성'을 더 중요시했다, 그래서 주문자들의 요구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다. 

렘브란트라는 존재는 네덜란드 회화의 모든 분야에서 당대 어느 화가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화가이다. 


다윗과 압살롬의 화해 - 에르타미슈 박물관


러시아 에르타미슈 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작품 하나를 보도록 하자.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꾀하지만 결국은 사로잡히게 되고 아버지와 다시 화해하는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군더더기는 생략하고, 배경은 어둡게 하고 이 극적인 장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명암효과를 활용하였다.


왕자가 아버지의 품에 엉거주춤하게 안겨 흐느껴 우는 모습과 돌아온 아들을 감싸 안은 다윗의 모습. 압살롬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자세와 아버지의 얼굴과 손을 통해 그들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그의 그림 속의 등장인물은 루벤스의 그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마치 그 상황에 들어가서 인물의 감정을 파헤친 것처럼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옴을 느낀다. 


곰브리치 할아버지가 그의 책에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진정한 화가라고 칭송해 마지않는데, 필자도 일백 퍼센트 공감한다.

(그런데 어릴 적 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 - 화가를 꿈꿨지만 가난한 형편에 물감 살 돈이 없었던 불쌍한 주인공 - 가 죽을 때까지 보고 싶어 했던 그림의 화가는 루벤스였다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올라간다.

다음은 마스터피스 10번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의 작품들이다.


자코메티의 청동 조각 작품들


Woman of Venice III,이라는 표제의 작품인데, 자코메티의 상징 작품이라 할 수 있는 Man Walking에 대응하는 작품이다. 

(위 사진에서 우측의 기다랗게 늘려진 청동 인물)


이 작품 역시 그의 조각 작품의 특성을 고스란히 버무렸다. 길게 늘린 몸, 눈의 세부 묘사, 구들구들한 표면 처리가 마치 바람에 풍화작용을 겪은 것 같다. 

그는 세월에 시간 속에 닳은 것처럼 끊임없이 같은 조각상을 다듬으며 정제했다. 물론 청동으로 제작하기 전에 수없이 많은 석고틀을 제작했다고 한다. 


피터 몬드리안의 작품과 피카소의 그림이 하나씩 이웃해 걸려있다.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 피터 몬드리안(좌) , 우측에 피카소의 그림


Le pot rouge - Fernand Leger 作, 1926


페르낭 레제의 작품도 하나 보인다, 제목은 빨간 냄비. 그런데, 어디가 냄비인 건지. 전혀 냄비 같지 않아 보이는데요.


베니스의 산 마르코 광장- Francesco Guardi, 1775-1785


유럽의 살롱이라는 이탤리 베네치아(Venezia, Venice)의 산 마르코 광장을 그린 그림도 있다. 


중세 유럽의 문화와 예술의 중심은 단연 이탈리아였다. 프랑스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한 전도 유망한 이들을 이탈리아로 보내 건축, 회화, 조각 등 팔방미인이었던 문화 선진국 이탈리아의 예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국으로 돌아와 전파하도록 해, 자국의 그것을 업그레이드하고자 했다. 

샤를 르 브룅이 그러한 정책을 세우고 '포스트 이탈리아'를 꿈꿨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Nature morte à la tranche de saumon - Jean Siméon Chardin 作, 1730


단출한 현대 미술 화가 작품들


아래 두 작품은 생 빅투아르 산(Mont Sainte-Victoire)을 포함한 그림들.


수녀들이 예배를 드리는 데, 가운데 열린 문밖으로 생 빅투아르 산이 내다보인다.

실내의 어둡고 침착한 분위기와 문밖의 환한 가운데 생 빅투아르산의 봉우리가 대비된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작품이 마스터피스 8번, 9번을 차지하고 있다.

François-Marius Granet -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06


이 로맨틱한 느낌의 주인공은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엑스 지방의 화가, 청년 그라네의 모습이다.

앵그르의 특징인 자연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 배경에는 앵그르가 1802년부터 20여 년간 머물렀던 로마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은 두 화가 - 앵그르와 그라네 -의 참된 우정을 보여주는 그림이기도 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의 계보를 이은 앵그르는 잘 나갈 때 역사화만 그리다가 말년에는 초상화가로 전향한다. 

이 그림은 그가 19세기 초반에 뛰어난 초상화가였음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에 그라네는 풍경 화가로 남는다.)


자 다음에 그의 또 다른 작품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마스터피스 9번 작품.

Jupiter and Thetis -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11 oil and canvas


마치 이곳 미술관의 '왕' 작품인 양 떡 하니 버티고 있는 사이즈도 '왕'인 작품.


1811년, 앵그르가 로마에 체류할 때 그라네에게 보낸 마지막 그림으로 소설 일리아드(Iliad)의 장면, 매혹적인 님프, Thesis 가 신들의 왕인 주피터(제우스)에게 그의 아들 아킬레스를 보호해달라고 청하는 부분에서 소재를 따왔다.


앵그르는 신체적인 비례를 따르지 않았음은 물론 -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 신체를 비틀려 표현하였다.

테티스의 비 이상적으로 늘어난 허리를 보라. 루브르 박물관에서 봤던 그의 '오달리스크'를 연상시킨다. 아니 그녀가 이 그림에서도? ㅎ

그녀의 얼굴은 물고기의 머리 같고, 그녀의 등은 뱀처럼 감겨있다. 그녀가 바다의 신임을 연상하게 한다. 

왕좌 우측에 주피터의 상징인 검독수리가 보인다.


역시 그답게 테티스가 걸친 옷의 주름과 주피터의 분홍색 옷의 주름, 그리고 왕좌에 새겨진 부조의 묘사가 아주 생생하게 느껴진다.

부조는 일리아드 속 전쟁을 묘사하고 있을 터. 

좌중을 압도하는 주피터의 위엄 있는 모습이 그림 전체에 뿜뿜!

세잔과 피카소는 이 그림 속 캐릭터의 괴물스러움에 매료되었다고 전해진다. 




본관 관람을 마치고 부속 별관, Granet XXe으로 향한다. (도보 5분 거리) 

이곳은 특별히 17세기 AIX의 건축 장식, 모네, 반 고흐, 피카소, 브라크, 듀피 등의 작품들과 120여 점의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특별히 건물 내부 구조가 멋지다.


안락의자에 앉아 모자를 쓴 여인 - 파블로 피카소, 1929

큐비즘(Cubism)의 창시자 피카소의 작품이다. 그의 다차원의 평면화 치고는 그리 복잡도가 높진 않은 그림인 편.


기타, 신문, 테이블과 병 - 파블로 피카소, 1921


다음은 갤러리에서 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피카소의 작품이다. 마스터피스 13번 작품.

의자에 앉아 고양이를 안은 여인 - 파블로 피카소


그림 속 모델은 피카소의 두 번째 부인이자 마지막 사랑, Jacqueline Roque.

성직자 느낌과 어두운 느낌의 이 자화상이 다소 유머러스하게 느껴지는 건 모델의 오른 쪽 어깨에 난 scratch 때문.

왼 손에 앉고 있는 고양이가 긁은 것이다! ㅎㅎ 그리고 모델의 머리칼도 흩트려놓았다. 

어느날 정원에서 놀고 있는 야옹이 한 마리를 발견했고, 사라질 때까지 그의 작품에 등장하였다.


피카소에게 그림이란 그의 일생의 바로미터였다. 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그의 작품에 투사하였다.

Jean Planque 가 가장 좋아한 작품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림의 강렬함때문에 무서워서 때때로 벽으로 돌려놓기도 했다고.ㅋ


피카소는 1910년대 초반에 '종합적 큐비즘'을 주도하는데, 이전 '분석적 큐비즘'의 대상의 철저한 분해와 질서 있는 배합을 확장해 해체와 재구성 사이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고자 했다. 

페르낭 레제는 여기에 대상에 동적인 움직임을 더해 화면에 역동감을 도입하는 등 새로운 가능성을 시도하였다. (출처: 위키피디아)

필자는 입체파 화가의 그림은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다만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새로운 미술 사조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목욕하는 두 여인, 에드가 드가의 작품


별관은 건물 자체도 멋지다. 천장이 인상적이다.

별관의 아치 천장


구조의 힘을 더하고 장식을 위해 늑골을 더한 Rib-valut 형태의 천장. 그 아래 공간을 칸막이로 분할해 임시 갤러리로 만든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모습


Légende de la rue - Jean Dubuffet


이 별관에 전시된 작품의 기증자인 Jean Planque.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의미 있는 만남 중 하나였던 장 뒤뷔페(Jean Dubuffet) 와의 만남을 이렇게 언급한다. '그는 내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 난 철저하게 무지했다. 그는 만남을 즐겼고, 바보 같은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는 내게 그림을 분석하는 기법을 알려주었다. 즉, 보는 방법을 아는 것.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Invention is what matters. Only invention and subversion. 발명이 중요합니다. 오직 발명과 파괴뿐.'


이런 호의로 대중이 뒤뷔페의 대담한 묘사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할 때 그는 뒤뷔페의 작품을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였다.

하지만, 플랑크는 고전적인 의 표준을 강조하는 전통주의를 중시한 사람이라 아웃사이더 아트(Art Brut)를 표방하는 장 뒤뷔페의 전통을 배척하는 주의에 끝내 동화되진 못했다. 장 플랑크는 미술 작품은 선의 표현, 색의 풍요, 질감의 느낌 등 창조자는 어떤 의 표준을 따라야 한다는 뚜렷한 견해를 유지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Composition avec des lettres (문자 구성) - 페르낭 레제


이렇게 별관의 작품들도 한산한 분위기에서 찬찬히 하나도 빼놓지 않고 감상하였다. 

약 한 시간 반여 소요된 것 같다.


Granet XXth 풍경


아내와의 프랑스 여행 마지막 미술관 풍경을 이렇게 전한다. 

초라하지만 더없이 강렬했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어느 자화상 보다도! 고흐의 자화상 보다도!


그라네를 비롯한 다수 기증자들의 헌신으로 인해 이렇게 시민들을 위한 훌륭한 미술관이 개관할 수 있었다. 

그들의 기부문화가 새삼 부러워진다. 

엑상 프로방스 가면 이곳 그라네 미술관에서 잠시나마 미술 작품들을 둘러보는 시간을 갖기를 추천해 마지않는다.


http://www.museegranet-aixenprovence.fr/en/nc/hom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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