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오후 3시. 아틀리에 가는 길, 한적한 돌담길이 양쪽에 펼쳐진다. 기분이 그냥 좋다.
투어리스트는 어째 우리뿐인지 다른 인기척이 없다.
한낮의 햇볕이 따사롭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으니 유의하시길.
이곳 말고도 세잔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 여럿이 있다. (하단 Map)
엑상 프로방스 마을 전체가 화가 세잔을 오마주하고 있다.
마을 어귀 어디에서나 그의 발자취가 닿은 곳엔 어김없이 그를 상징하는 엠블럼이 붙어 있다. 바닥에도 건물에도.
그가 태어나고 성장한 마을이자, 정치학을 때려치우고 미술에 투신한 이후에도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작품 활동을 계속하였고 말년에는 이 지역 높은 곳, Chermin des Lauves 근교에 그의 스튜디오를 지어 작업을 했고, 그의 사후에 대중을 위해 개방되었다.
그곳이 바로 '세잔의 아틀리에'이다.
세잔의 아틀리에 (Atelier De Cézanne)
세잔(Paul Cézanne)의 아틀리에는 그의 마지막 생애(1902~1906)를 보낸 작업실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1층은 티켓 및 기념품 판매장이며, 2층의 아틀리에를 대중에 개방하고 있다. 세잔이 생전에 사용한 도구, 발표하지 않은 그림, 세잔의 비밀공간, 친구와 교환한 서신, 과거 잘나가던 시절의 사진 등을 가까이에서 확인하며 그의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 앞/뒤뜰 정원은 세잔이 사랑했던 자그마한 산책로로 그의 생애를 반추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그가 직접 조성했다는 산책로. 그 역시 자연을 사랑해 마지않았던 사람이었다. 직접 나무를 베며, 정원을 가꾸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폴 세잔이 누구인가.프랑스인 철학자 모르시 메를로퐁티는 세잔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보고 느끼고 싶어 했다. 궁극적으로, 그는 보는 것이 곧 만지는 것이 되는 경지를 추구했다.
그는 붓으로 한 획을 긋고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왜냐하면 한 획, 한 획마다 “공기와, 빛과, 물체와, 구성과, 테두리, 그리고 스타일”을 함유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모르시 메를로퐁티 '세잔의 의심'
세잔은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을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작업 환경은 자연스레 현실의 일부분이 되었다.
기존에 틀에 박힌 관점에서 벗어나 오브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하나의 화면에 통합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작품 세계는 훗날 프랑스의 아방가르드에 영향을 미쳤고, 나아가 오브제를 분리/해체하고 다양한 시선에서 본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구성하는 입체파(Cubism)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미술은 개인적인 통각이며, 자신이 이해한 것을 그림에 구성하여
그려 넣을 수 있어야 한다.
- Paul Cézanne
세잔의 산책로를 잠시 둘러보고 그의 아틀리에로 들어간다. 티켓은 1층에서 구매하면 된다.(6.5€/1인)
그리 넓지 않아서 여남은 명 단위로 끊어서 입장시킨다.
대한민국 방문객이 많은 지 한국어 설명서도 준비돼 있다.
미술 칼럼니스트 정연복 씨가 재능기부하신 듯.
로브 아틀리에 (I'Atelier des Lauves)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모친의 사망 이후 세잔이 Aix 교외 구릉지역인 이곳의 토지를 매입하여 화실로 만들었다.(면적 50㎡)
본인이 직접 도면을 설계했다고 하는데, 햇살이 잘 드는 남쪽에 두 개의 큰 유리창문을 만들어 햇볕이 잘 들어오게 하였다.
대형 캔버스 작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천장까지 닿을 듯한 작업대도 주문하고, 여닫이 틈을 만들어 두어서 그 길로 캔버스를 통째로 바깥 정원 쪽으로 옮겨놓고 옥외에서 자연광을 느끼며 그림에 반영하곤 했다.
화병 등 오브제뿐 아니라 그의 작업복, 프록코트, 모자와 외투가 그대로 걸려 있다. 언제고 돌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듯이.
선반 위에는 각종 화병, 물 잔, 설탕 그릇, 작은 항아리 등의 오브제들이 있다.
이러한 화구(畵具)들이 그의 정물화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생명을 얻어 꿈틀대었을 것이다.
세잔 하면 떠오르는 '세잔의 사과'.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봤다.
사과 하나로 세상을 놀래키겠다고 선언한 그. 실제로 미술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그였기에 현대 미술 사조에서는 그를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칭하는 것이다.
어떤 오브제는 눈높이보다 위에, 어떤 것은 눈높이에서, 어떤 것은 눈높이보다 낮은 위치에서 각각 본 모습을 하나의 화면으로 통합하였다.
필자는 세잔의 그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붓 터치도 그렇지만 자연의 모든 것을 원기둥, 원으로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조금 이해하게 되면서 복잡한 묘사에서 단순한 묘사로 거듭 변하는 모습을 보며 과연 입체파에 영향을 주었음 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정면에 보이는 액자 속 그림은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그림이다.
낭만주의의 대가 들라크루아를 애정하였던 것 같다.
세잔이 당시 예술가들과 주고받았던 편지가 일부 공개돼 있다. 흘림체가 참 멋졌다.
또 다른 편지, 세잔의 마지막 시기였던 1895년 7월에 Claude Monet에게 쓴 편지에서는 모네에게 자신의 작품에 보내준 지지에 대해서 고마워하며, 그것이 자신에게 자극이 되었노라고 감사를 표하면서, 파리를 떠나서 이곳으로 다시 올 때 만나지 못한 미안함도 함께 표하고 있었다.
바닥에 놓인 서랍장 위로 그의 걸작품의 모델로 사용된 럼주 병, 초록색 올리브 단지, 생강 단지, 큐피드 석고상과 사과를 담은 쟁반이 놓여있다. 인물 스케치도 몇 점 보인다.
가이드의 10분 설명으로 끝나는데, 필자는 몰래 숨어서 다음 조 설명할 때 한 번 더 설명을 들었다.
세잔의 발자취를 가까이에서 조금 더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비수기라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좋았고, 그의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화방에 가보고, 그가 직접 가꾸었다는 정원을 둘러보고 했던 시간이 참 행복했다. 미술학도 다 됐네 그류~
자 이제 그가 평생에 걸쳐 그렸다는 생 빅투아르(Mt. Saint-Victoire)을 보러 가자! (AIX 기준으로는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화가의 언덕 (Terrain des peintres)
세잔의 아틀리에에서 도보 15분 위치에 '화가들의 땅'이라 불리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세잔은 이곳에 자주 올라 평생에 걸쳐 생 빅투아르 산을 캔버스에 그렸다. 수채화 17점, 유화 11점.
반복적으로 동일한 오브제를 묘사하면서 기존의 전통적 원근법 적용과 생략 기법에 일대 혁신을 이루게 된다.
확 트인 공간에 저 멀리 보이는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보면 마치 세잔이 된 듯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후 4시 15분. 언덕에 오르니 주변이 환해진다. 가릴 게 없다는 뜻.
언덕 정상에는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의 모습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 미술관에 소장된 그림을 사진으로 게시해 놓았다.
똑같은 산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가장 단순화된 형태는 원형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이 모습을 그는 수도 없이 반복해서 그린 것이다. 어떻게 똑같은 그림을 반복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같은 사물을 매번 그릴 때마다 색다른 시도를 적용하며 대상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하며 기법을 탐구했을 것이다.
그의 집념은 정말 대단하다.
(그는 숨이 멎을 때까지 야외에서 풍경화를 그리다 갑자기 불어닥친 비바람에 건강을 상해 1주일 후에 폐렴으로 사망하게 된다.)
세잔이 처음 산을 그린 것은 1882년으로, 이 시기 작품에서 산은 주제로서가 아닌, 풍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등장했다. 그러나 1886년에 이르면서부터 산은 엑상프로방스 지방을 그린 세잔 회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세잔의 붓질은 개개로 분리됨과 동시에 통일성 있는 전체를 형성한다.
세잔은 산과 하늘을 모두 같은 범주의 파란색으로 칠해 놓았다. 따라서 산 -전체구성상 3분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 -은 집채들과도, 전경에 거대하게 뭉쳐 있는 미분화 상태의 잎새들과도 분리되어 있다.
이처럼 자연을 본질적 단일체(unit)로 환원하는 <생 빅투아르 산>의 원칙은 세잔이 이 주제에 부여한 시각적 정확성과 엄밀함을 드러낸다.
또 이것은 얼마 후 입체주의를 통해 실행될 형태, 지각, 공간에 대한 실험을 예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생 빅투아르 산 [Mont Sainte-Victoir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화 1001점)
아 그런데! 그림이 걸린 푯말 한 켠에 중절모자가 있는 것 아닌가.
그 모자를 써보고 마치 그가 된 양 포즈를 잡아본다.
생 빅투아르 산을 바라본다...
정말 이 순간은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세잔을 회상하던 바로 그 순간!
생 빅투아르 산의 가슴 벅찬 감동을 가슴에 안고 언덕을 내려온다.
화가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에 예쁜 집을 발견.
AIX의 이곳저곳에 세잔을 기념하는 장소가 숱하다. 그 가운데 그의 아틀리에와 언덕을 올랐을 뿐이다.
남은 체류 기간 동안 그의 발자취를 조금 더 더듬어보고자 한다.
◆ 세잔의 아틀리에 :
https://www.cezanne-en-provence.com/preparer-sa-visite/individuel/visiter-atelier-cezan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