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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6.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


가을 하늘답게 권운이 높게 피어올랐다. 멋진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청동 기마상 하나.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전 입구로 향하는 길에 마주하는 루이 14세의 기마상.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태양왕 올시다.

베르사유 궁전은 그의 거처이자 권력을 행사했던 장소 아니었던가.  


[베르사유 궁전 (Château de Versailles)]

프랑스 파일 외곽 지역인 베르사유에 위치한 왕궁(1624년)으로 1682년 루이 14세가 거처를 이곳으로 옮기면서 화려하게 변모하였다. 
프랑스 바로크 건축물을 대표하며 호화로운 건물 외관을 위시하여 왕과 왕비의 아파르트망, 거울의 방, 분수 등이 볼거리이고, 드넓은 정원은 프랑스 정원 양식의 정수를 보여준다. 안뜰에는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과 프티 트리아농이 위치하고 있다. 

루이 14세가 지방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강제로 이곳으로 이주하게 하였고 귀족들의 세가 점차 약해짐에 따라 비로소 절대왕정을 확립하게 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공화정 체제가 들어설 때까지 왕 중심의 절대 권력의 중심지, 즉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을 대표하는 장소로 자리매김하였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었던 루이 르보(건축 설계), 앙드레 르 노르트(정원), 샤를 르브룅(실내 장식, 회화)이 설계를 맡았다.
웰컴 투 베르사유 궁전!


베르사유는 2012년 패키지여행 때 방문한 이후 두 번째. 이번엔 필히 프랑스식 정원의 진수, 베르사유 정원을 보고 오고 말테다! 

시간은 오전 10시 30분경.


베르사유 궁전에 입장하기 위해선 필히 소지품 검사를 받아야 한다.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다. 

정문을 중심으로 왼편에 안내소가 있어 궁전 지도 하나 챙겨간다. 


명예의 안뜰 (Cour d'Honneur)에서 명예롭게 한 장


입장하기 전, 금 도금한 황금 지붕이 인상적인 화려 하디 화려한 궁전을 병풍 삼아 인증 사진을 찍는다.


입장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소지품 검사도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베르사유 궁전 관람 Tip

0층에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공주의 아파르트망과 왕실 오페라극장을 지나 1층으로 올라 본격적인 관람을 시작한다.
- 1층 : 프랑스 역사 박물관 - 왕의 아파르트망 - 전쟁의 방 - 거울의 방 - 왕의 침실 - 왕비의 아파르트망 - 프랑스 역사 박물관. 
- 다시 0층으로 내려와 황태자의 아파르트망 - 정원 입구로 나옴


드디어 베르사유 궁전 입장. 빠밤~


공주의 아파르트망에 들어서자 빨간 융단을 배경으로 아리따운 공주님의 풀샷을 잡은 큰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실 공주가 너무나 많아 누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더라. 


공주의 아파르트망


여럿 공주들의 초상화와 함께 오래된 쳄발로 두 대가 놓여 있다.

마담 빅투아르의 응접실


화려한 꽃무늬로 깔 맞춤한 공주의 침실. 화려한 샹들리에도 눈에 띈다. 방이 20평은 족히 되는 것 같다. 

마담 아델라이드의 침실


다음은 우리 공주님들의 응접실. 

이런 장소에서 신동 모짜르트가 어린 마리 앙투아네트 앞에서 연주를 했지 싶다.

마담 아델라이드의 응접실


공주의 아파르트망을 지나 마주치게 되는 곳이 왕실 예배당(Chapelle Royale)이다. 1층까지 뚫려있다.

왕실 예배당


금빛으로 화려한 제단 장식과 중앙의 파이프 오르간이 인상적.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식이 여기서 열렸다. 

사진에 보이는 천장화는 '예수의 부활'이며 또 다른 천장화로 '성령의 비둘기' 가 유명하다.    

바리케이드로 막혀 있어 더는 구경할 수 없었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이동.

이어서 길게 이어진 통로에 '베르사유 역사 박물관' 이 있다.

한 쪽면을 가득채운 그림


벽면 가득히 긴 화폭의 어마어마한 작품이 걸려 있다. 무슨 역사적 사실을 담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제 본격적인 하이라이트의 시작! 왕의 아파르트망 (Grand Appartement du Roi)이 눈앞에 펼쳐진다. 

왕의 거처를 비롯해, 집무실, 접견실, 만찬장, 오락실 등 7개의 방이 쭉 이어져 있다.

헤라클레스, 비너스, 다이애나, 마르스, 헤르메스 그리고 아폴로 등 각 방들에 그리스 神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고, 화려한 천장화(Ceiling)로 묘사해 신의 권위와 위엄을 빌어 왕궁을 방문하는 외국 사신이나 권력자들에게 루이 14세의 위세를 나타냄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는 효과를 의도하였을 것이다.


루이 14세는 겨우 다섯 살에 아버지(루이 13세)를 여읜 후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명 재상 리슐리외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후.

후임으로 임명한 마자랭을 반대하는 귀족층이 세를 합하여 일으킨 '프롱드의 난'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파리에서 도망쳐 도피생활을 겪어야 했고, 이것이 훗날 트라우마로 작용해 그는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켜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인식한다.


집권 초기 유럽 강대국들과의 전쟁에 연전연승하며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황제의 귄위를 내세우고자 화려한 궁전을 짓고 '짐이 곧 국가'라며 태양왕임을 선포한다. 잠재 위협요소인 귀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강제로 베르사유로 이주시키는 등 귀족들을 소위 '관리'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는데 성공하게 되고 그만의 왕국이 공고히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루이 14세의 정치력이 발휘된 장소가 바로 이곳 베르사유 궁전이었고,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헤라클레스의 방 천장화


인간의 피를 나눈 헤라클레스 - 중앙에 몽둥이를 들고 마차를 탄 이 - 가 신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축하하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중앙에 붉은 옷을 입은 제우스 신과 헤라, 아래에 전쟁의 신 아테네, 우측에 삼지창을 든 제우스의 동생 포세이돈이 보인다.


천장화를 보느라 목이 좀 아팠다. 그림이 다소 흐릿해 뚜렷하게 잘 뵈지도 않는다. 


헤라클레스의 방 남쪽


루브르박물관의 [가나의 혼인잔치]로 유명한 화가 베로네세의 작품이 남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몬 집에서의 저녁 식사]라는 작품으로 이 역시 대형 캔버스에 유화로 그림을 그렸다. 베네치아의 한 도제가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 지원을 요청하면서 루이 14세에 선물한 작품이라고.


인접한 다음 방은 비너스의 방.

비너스 방의 루이 14세 조각상


럭셔리한 적갈색 대리석 이오니아식 열주가 벽을 장식하고 있고 천장과 방 곳곳에 황금 장식으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천장화 아래의 그림들은 루이 14세의 업적을 고대 신화에 담아낸 것으로 루이 14세를 신격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하얀 대리석으로 조각된 로마 갑옷을 입은 루이 14세의 모습은 유럽의 맹주로 군림하던 프랑스의 모습을 대변한다.  


비너스방의 천장화


비너스방의 천장화부터, 다이애나의 방,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아폴로의 방 모두 샤를 르 브룅(Charles Le Brun)과 그의 스튜디오(화실)의 작품이다. 이 모든 화려한 천장화와 실내 장식을 샤를 르 브룅이 진두지휘했던 것.


그림인가 실제인가


한 쪽 벽에는 이오니아식 열주와 소실점 구도의 원근법을 적용한 그림이 묘사돼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실제 신전 기둥 같다.

이 역시 베르사유 궁전 건축을 총괄한 샤를 르브룅의 작품이다. 

그는 루이 14세가 각별히 애정한 궁정 화가이자 실내 장식가였다. 루이 14세의 주문을 받들어 베르사유 궁전 전체가 '태양의 신 아폴론'을 연상케 하도록 내부를 설계하였다. 전쟁의 방, 거울의 방을 비롯해 많은 실내 장식과 그림이 그의 작품이다. 

유명한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니콜라 푸생을 사사하였으니 그의 실력은 당대 최고였을 터.

하지만 후대에 정권을 찬양하는 궁정 화가로서 비난도 함께 받았다.


여기서 위에 언급한 프랑스 고전주의 화풍을 확립한 니콜라 푸생의 작품 [아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Et in Arcadia ego]를 잠시 살펴보자.

아카디아에도 나는 있다.- 니콜라 푸생


[아카디아의 양치기들]로도 불리는 이 작품은 17세기 고전주의 화풍을 잠시 엿보게 해준다.

평생 성화 혹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천착해 그림을 그렸으며, 루이 13세의 궁정화가로 잠시 일하기도 하였으나 그는 개인을 위한 초상화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즉, 세속적인 돈을 좇지 않았다는. 오로지 화폭에 등장하는 인물을 통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할지에 대해서만 연구하였다.

종교, 역사, 신화를 읽고 그 인물을 캔버스에 어떻게 묘사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목동들이 묘비에 새겨진 글자를 가리키며 노란색 옷을 입은 여인에게 그 뜻을 묻는 듯한 장면. 여기서 '나'는 곧 죽음을 의미하며, 아카디아라는 이상향에서도 죽음은 존재한다는, 즉 Memento Mori를 상징한다. 다분히 철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스승 밑에서 공부했지만 샤를 르브룅은 오로지 루이 14세만을 위한 그림을 그렸으니 스승과 제자의 길이 완전히 대척점에 위치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당시 그림에서는 그림자를 볼 수 없었다는 데 묘비에 나타난 그림자의 모습은 당시 선구적인 시도로 평가받는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는 데 필자는 이번에 보지 못하였다.


다음에는 다이애나의 방 (Salon de Diane)

루이 14세 흉상


천장화에는 사냥을 즐겨 했던 루이 14세의 모습을 나타내듯 사냥의 神 다이애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위 사진은 아님)

루이 14세의 흉상은 위대한 이탤리 바로크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벽난로 위에는 그리스 신화의 아가멤논이 트로이 전쟁의 승리를 기리며 자신의 딸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걸려있다. 아 무서버라. 

이피게니아의 희생


외국에서 온 사신들이 루이 14세를 접견할 때 비너스의 방, 다이내나의 방을 지나쳐갔을 텐데 으리으리하고 화려한 방을 보며 잔뜩 기가 죽었음직하다. 


다음은 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방이다.

다른 방과 구별되는 붉은색 벽지가 인상적이며, 원래는 군 근위병을 위한 방으로 계획했으나 방이 화려해서인지 음악 연주회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머큐리의 방을 지나 루이 14세의 유명한 초상화가 걸려 있는 아폴로의 방(Salon d'Apollon)이 나타난다.

아폴로의 방


샹들리에가 켜져 있어 황금 장식을 더 빛나게 비추고 있어 화려함을 사랑한 루이 14세의 취향에 딱 맞는 방일 듯.

처음에는 온통 금은보화로 방을 치장한 터라 베르사유 궁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꼽혔으나 집권 말기 재정이 바닥나면서 전쟁의 비용으로 떼내었다고.  


자 럭셔리를 입에 달고 살다가 나라의 재정을 말아먹은 루이 14세의 초상화 한 번 봅시다.

루이 14세


몸에 걸치신 망토 안감의 흰 털은 담비의 그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최고의 소재였다고.  빨간 하이힐을 신은 모습도 눈에 띈다.ㅎ


다음은 전쟁의 방(Salon de la Guerre).

루이 14세 때 유럽 강대국들을 - 독일, 네덜란드, 스페인 등- 차례로 굴복시켰던 전투를 묘사한 그림들로 도배가 돼 있다.


전쟁의 방


루이 14세를 찬양하는 내용 일색이라 지겨울 즈음이 되면 나타나는 베르사유에서 가장 인기 많은 매력 만점의 장소, 바로 거울의 방(Galerie des Glaces)이 짠하고 눈앞에 등장한다.


거울의 방은 왕의 아파르트망의 마지막 방인 '전쟁의 방'과 왕비의 아파르트망의 첫 번째 방인 '평화의 방'을 연결하는 길이 73m의 공간으로 베르사유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아치 모양의 창문을 통해 햇볕이 공간에 투사되고 이 빛은 둥그런 아치 형태의 거울에 반사되고 그 빛이 샹들리에의 촛불과 만나 방 전체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도록 설계하였다. 

르브룅과 건축가 Jules Hardouin-Mansart 가 1678년부터 1686년동안 이를 실행에 옮겼다.


베르사유 궁전의 백미. 거울의 방


왕은 매일 이 거울의 방을 통해 Chapel 로 이동한다...

화려한 천장화와 길게 드리워진 샹들리에 그리고 거울에 비친 휘황찬란한 모습은 당시 연회장으로 제 격이었을 터.


황제의 연회 장소는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듯 과시욕에 물든 화려함 뒤에 인간의 허영심을 볼 수 있다.

백성들은 높은 세금과 귀족들의 횡포에 시달리는데 왕은 경치 좋은 궁전을 지어놓고 사치와 향락에 빠진 삶을 살았으니 그런 상황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준다. 


화려한 거울의 방에서


이 방이 화려한 만큼이나 역사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보불 전쟁) 이후에 유럽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한 독일이 1871년 이곳에서 제국의 성립을 선포한 장소이다.

굴욕을 당한 프랑스는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되는데, 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승리한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배상금을 포함한 불평등 조약을 맺을 때 이곳에서 체결하게 되었고, 그들이 받았던 치욕을 되갚아 준 장소이기도 하다.  

The delegations signing the Treaty of Versailles in the Hall of Mirror, 1919. [출처 : 위키피디아]


통로에 거울이


총 578개의 거울이 있는데, 거울이 다소 오래된 듯 약간 기울어진 것도 보이고 굴곡된 거울도 있다. 당시 유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이 톱이었는데 이들 장인들을 프랑스로 초빙해와 직접 생산하여 공급했다고 한다.

양 측에는 거대한 사람 모양의 황금 촛대가 줄지어 있다.

여름에는 이곳에서 공연이 열린다고 하는데, 단 20분간의 공연이지만 분명 뜻깊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으니 참고하시길.


창밖으로 대운하가 내려다보인다.


화려한 천장화


천장화에 태양으로 묘사한 루이 14세의 모습도 보인다. ㅎ


1661년부터 1678년까지의 루이 14세의 생애를 신화 속의 인물로 묘사한 서른 개의 그림이 연작처럼 이어져 있다. (위에 보이는 그림은 독일의 라인강을 건너는 왕의 모습)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처럼 직접 천장에 회를 칠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을 먼저 그리고 이를 천장에 붙이는 방식이었으니 참고하시기를.


거울의 방


거울의 방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인파로 가득.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좀 한산하지 않을까 싶네요.

눈이 호강하는 거울의 방을 지나 왕비의 아파르트망을 지나 '프랑스 역사 박물관'에 도달한다. 


제일 처음 방은 '대관식의 방'. 방의 이름에 걸맞게 예의 그 그림이 걸려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루브르 박물관에서 보았던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과 동일한 그림.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그린 것이다.


그림 왼쪽에 머리 장식을 한 네 명의 여인이 서 있는데 두 번째 여인이 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이 루브르의 그것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부분. 다비드가 맘에 품고 있던 여인이라 구분해서 그렸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여부는 그에게 물어봐야 정확하겠지만. ㅎ 


이 그림도 그의 치적을 상징하는 그림이겠거니


대관식의 방 전경


나폴레옹 1세와  그에 아내 조세핀의 초상화


그다음에는 채광 창이 인상적인 '전투 갤러리 (Galerie des Batailles)' 가 이어진다. 

루브르 궁전의 그랑 갤러리와 느낌이 비슷. 아니나 다를까 이곳을 설계한 루이 필리프가 그곳을 모방해 만든 길이 110m의 전시 공간이다.

루이 필리프는 7월 혁명 이후 의회의 지지를 받아 입헌 군주가 된 이로 이곳 전투 갤러리를 통해 왕정의 정통성을 인정받고자 하였다.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 7월 혁명을 기념하게 위해 그린 그림 아니겠는가. 

(하지만 보수적인 왕정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에 의해 2월 혁명이 잇따르게 된다.)


전투 갤러리


프랑스의 전쟁사를 여러 점의 대형 그림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세우는 장면부터 나폴레옹의 전투, 잔 다르크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는 그림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티유부르 전투 (Batalile de Taillebourg)'.

루이 9세 통치 시대인 1242년 7월에 치러진 전투를 묘사하였는데 역동적인 말의 모습을 보면 들라크루아의 작품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티유부르 전투 - 들라크루아, 1837년


그리고 헨리 쉐퍼(Henry Scheffer)가 그린 오를레앙의 잔다르크의 모습을 담은 그림도 볼 수 있다.

잔 다르크의 그림은 처음이다.


전투 갤러리 관람을 끝으로 베르사유 궁전 내부 관람을 마치고 나온다. 오후 12:50분.

약 1시간 50분여간 천천히 거닐며 루이 14세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장소를 둘러보았다.


루이 14세는 죽음을 앞두고 왕위를 계승할 증손자를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후계자의 나이도 다섯 살이었다는 것은 우연인가.


나를 닮지 말거라. 화려한 건축물에 마음을 쏟지도 말고,
전쟁을 좋아하지도 말아라. 이웃 나라와 싸우기보다는 화친하도록 애쓰거라.
백성들이 신을 편안히 섬길 수 있게 돕거라.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군주가 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 
- 김태진의 [아트 인문학 여행]


평생 정적을 견제하며 맘 편할 날 없었을, 겉으로만 화려했을 그의 인생을 잠시 떠올린다. 




오후 3시경. 베르사유 궁전의 별궁인 그랑 트리아농(Grand Trianon)으로 가는 길. 

보통 꼬마기차를 타고 가지만 우린 이 분위기를 살려 걷기로 했다.

그랑 트리아농까지 쭉 뻗은 길


야~ 또 여기에 멋진 숲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내추럴한 자연 경관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곳은 나무들이 좀 더 화사한 붉은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랑 트리아농 구경을 마치고 돌아올 때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었으니. 후후 )

야~멋집니다.


10여 분 더 걸으니 드디어 그랑 트리아농 정문이 보인다.

별도의 교통수단이나 도보로 와야 하는지라 본궁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파가 한산하다.


그랑 트리아농


[그랑 트리아농 Grand Trianon ]


루이 14세가 정부였던 몽테스팡 부인을 위해 지었다가 후에 다시 맹트농 부인을 사귀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황후의 거처와 황제의 작은 거처, 정원 등으로 구분된다. 정원을 마주한 분홍색 이오니아식 열주가 인상적이다. 
베르사유 궁전처럼 거울과 유리로 장식한 '거울의 방(Salon des Glaces) 이 있고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꼽힌다.그 방안에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화화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와 그녀가 사용했던 가구가 놓여있다.
- 개방 : 12시 ~ 18:30분


황후의 거처에 거울의 방이 이어져 있다.

거울의 방

대형 여닫이문이 있는데 햇살이 강해서인지 닫혀있다. 정말 남향인가 보다.

 커튼 사이사이에 기다란 거울이 이웃해있다. 본궁의 그것과는 화려함이나 사이즈 측면에서 비교할 순 없다. 

그래도 하늘색 커튼과 하늘색 의자가 인상적인 방이었다.


황후의 거처


황후의 거처. 슥 보고 지나갑니다. 럭셔리도 어느 정도지 아유 인제 지겨워요 정말~ ㅎㅎ


건물 가운데 정원을 감상할 수 있도록 열주가 받치고 서 있는 테라스가 있다.

그랑 트리아농을 소개할때 자주 서용하는 대표 사진


그리스식 이오니아 열주가 쌍으로 6개가 줄지어 서 있다. 바닥은 교차하는 흑백 타일로. 인상적이다.

여기서 바라보는 정원이 너무 좋았다. 한 번 와서 보시길.

그랑 트리아농 정원



아기자기한 꽃과 작은 식재가 심어져 있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벌과 나비들은 붕붕 날아다니고 ~

프랑스식 정원 아니랄까봐


별궁 역시 프랑스식 정원의 엄격한 규칙을 준수?해야하기에 자로 잰 듯 (인공적인) 조경의 모습을 갖추었다.

일단의 프랑스 학생들이 계단에 드리워진 건물 그림자에 묻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견학 온 것이 분명해.


그랑 트라이농 전경


별궁의 외관은 분홍빛 대리석을 사용해 건축해서인지 여성적인 느낌이다. 

쁘띠 트리아농(Petit Trianon)* 이라고 이웃한 별궁이 하나 더 있는데, 그곳은 시간상 가지 못하였다. 

* 루이 15세가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은 별궁. 퐁파두르 부인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성으로 국방, 외교 등 국정에도 참여하였으며, 지금의 콩코드르 광장을 기획한 장본인. 또한 계몽주의에 입각하여 디드로의 백과사전 편찬 지원이라든지, 볼테르의 왕실 사료 작업,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펴내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뜻.


당구대가 놓여있었다.


노란색이 컨셉인 연회장


그랑 트리아농 외에 또 하나의 별궁으로 프티 트리아농(Petit Trianon)이 있다. 이 공간은 루이 15세가 후비었던 퐁파두르 부인을 위해 지었으나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나 주인없이 지내다가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른 후 부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선물한 별궁이다.


필자는 시간이 안돼 가보지 못했지만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꼭 가보시길. 

아래 사진에서처럼 베르사유 정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딱딱한 프랑스식 규칙에 답답해하던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 것일까.

 프티 트리아농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린 18세기 프랑스에 전해진 영국의 목가적인 풍경식 정원을 대표한다고.


프티 트리아농 , 왕비의 르 아모 (Le Hameau)


40분 정도 만에 관람을 마치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때는 10월 중순인지라 가을 느낌이 제법이었다.


가로수 길


보시라. 이 정도는 돼야 진정한 가로수길이라고 할 수 있잖은가? 

바닥에 쌓인  낙엽들과 나무 사잇길을 통해 베르사유에서의 가을 정취를 또 한 번 느껴본다.

특히나 우리 마나님께서 좋아라~ 하셨다. ㅎ


인생 사진 하나 추가요~


별궁 가는 길에 이렇게 멋진 장소를 발견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다. ^^

가을에 찾은 프랑스의 풍경이 너무 좋았다. 뜨거운 여름보다 봄, 가을이 여행하기에 좋을 것 같다.




자 베르사유 궁전 내부 투어 랜선 여행 어떠셨는지요~ 


* 베르사유궁전 홈피

https://www.chateauversailles.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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