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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미술관 속으로
2. 오랑주리 미술관

프랑스

오랑주리 미술관 (Musée de l'Orangerie) 은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더불어 파리 심장부의 위치하고 있으며,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을 소장할 목적으로 지어진 그야말로 모네의 모네에 의한 모네를 위한 미술관이라 할 수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 정문


입구는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의 열주가 쌍으로 엔타블러쳐(Entablature) 를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먼지가 좀 쌓인 듯 석조 건물 외벽이 좀 껌치했다. (외벽 색이 원래 어두운 색이었는 지도 모른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모네는 조국 프랑스에 수련 연작을 기증함으로써 파리지앵들 마음에 안식을 주고, 무한한 자연의 심상을 그들 마음속에 잔잔히 떠오르게끔 하였다. 1909년 이 프로젝트를 처음 기획할 때 모네는 이렇게 썼다. "작업으로 긴장된 내 신경은 고요한 물의 흐름을 따라 휴식을 얻고, 이방은 내게 만발한 수련으로 가득한 평화로운 피난처를 제공할 것이다." - 미술관 팸플릿


모네는 말년에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자신의 작업실을 짓고 일본식 정원을 꾸며 작품 활동을 한다. 

정원 연못에 수련을 심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수면의 빛을 캔버스에 담았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수련 작품 두 점을 국가에 기증하려고 했으나 그의 지인이었던 클레망소 총리가 총 여덟 점의 수련 연작을 요청하게 되었고, 전쟁에 상처를 입은 국민들을 위로하려는 뜻에서 이러한 대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작품의 길이를 총 합치면 100m 나 된다고.)


*수련 연작은 모네가 1914년부터 1926년 숨질 때까지 그린 최후의 작품이다.




0층(Ground Level)의 인접한 입구 안쪽의 두 개의 홀(Vestibule) 은 모네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천정으로부터 쏟아지는 태양빛을 최대한 활용하고 작품을 감상하기 좋게 타원형으로 설계하였다.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베르니의 모네의 정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왜 미술관 이름이 오랑주리냐고요? 원래는 루브르 궁전의 튈르리 정원의 오렌지 나무를 위한 온실로 사용된 공간이었거든요.


모네 수련(Water Lilies) 작품 History는 아래 미술관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https://musee-orangerie.fr/


모네의 수련 연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하 2층에는 Jean walter & Paul guillaume 컬렉션이 펼쳐져 있다.

르누아르의 유명한 '목욕하는 긴 머리 여인'과 루소의 작품, 모딜리아니 그리고 마리 로랑생 -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 등의 작품이 우리를 기다린다.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하고 cloakroom에 짐을 보관하고 작품을 보러 간다. 드디어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는구나! 아-

통유리를 통해 모네의 작품 내역을 볼 수 있다.


모네가 일본식 (아기자기한) 정원을 가꿔서인지 일본인들의 방문이 많아 일본어 소개도 돼 있다.

마네를 비롯한 인상주의자들은 일본 판화의 아름다움을 간파하고 열심히 수집한 최초의 부류였다. 


프랑스 화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유럽적 인습이 그들 몸에 배어 있었는지 일본 판화의 다소 우연적이고 파격적인 구도가 주는 자극을 놓치지 않고 그들의 작품에 '구현'하였다. 

그림이 반드시 모든 장면을 다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중요한 부분을 다 포함할 이유는 없는 것이라는 힌트를 얻는 것.


오랑주리 미술관 실내 *안내 팜플릿


위 사진처럼 조용한 분위기에서 그의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고 싶었으나 현실은 아래와 같았다. 바글바글 와글와글 북적북적.


개관하자마자 와야한다구.


2호실 관람부터 시작한다. 2호실은 Morning-Green Reflections-Clouds-Sunset 順으로 아침부터 일몰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빛의 변화를 포착하여 화폭에 담아내었다. 

북적북적 시장통 같지만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와 보겠는가. 마음을 가다듬고 그의 작품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2호실의 수련 연작

그러고 보니 예전 취리히 Kunsthaus에서 그의 작품 두 점을 본 적이 있다!예상치 못했던 수련 작품에 감동했던 기억이..  


3호실로 이동한다. 여기는 Morning with 'Weeping Willows'-Clear Morning with Willows-The Two Willows-Reflections of Trees 네 점이 전시돼 있다. 버드나무와 수련이 어우러진 또 다른 느낌의 작품들. 


3호실 전경. 여기도 바글바글


유럽인, 인도인,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까지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러 이곳까지 날아온 것일 게다. 이 장소에서 모네의 작품 세계를 얼마나 이해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었을지. 기대했던 만큼의 감동을 느끼지 못했을지라도 그가 후대를 위해 행한 이 아름다운 행위 자체는 분명 마음에 새기고 떠날 터. 


장인의 붓 터치를 느껴본다.


잔잔한 수면 위에 소담스럽게 핀 수련을 보며 감상자의 마음도 내면의 고요 속으로 침잠해간다. 

야외 어디든 널찍한 캔버스를 아랑곳하지 않고 펼쳐 놓고 빛에 따라 변화하는 오브제의 모습을 관찰하며 이를 화폭에 담아내던 그.

답답한 스튜디오를 벗어나 밖으로 나와 눈에 보이는 자연을 대상으로 붓질을 해야 한다던 그.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회화는 반드시 '바로 그 현장'에서 마무리되어야 한다는 모네의 생각은 오래된 습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안일한 제작 방법을 거부한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기법상 새로운 방법들을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 
화가가 실제로 겪었던 시각적 경험을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인상주의자들의 진정한 목표였다.
-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을 묘사하자니 색채들을 혼합하고 대상을 배치할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빠른 붓질로 터치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평가들로 하여금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판하게끔 만드는 부분이었으니.. 마치 그리다 만 것 같은 그림이랄까.


1874년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화단에 공개되었을 때 그림의 제목이 우습다고  화파 전체를 '인상주의자들(Impressionists) 라고 조롱하면서 그들이 인상주의 불리기 시작한 것 아닌가. 

모네 - 인상, 해돋이(1872) ,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


하지만 19세기가 도래하며 사진, 전기, 기계, 측량 기술이 발달하는 산업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 이상 세밀한 묘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게 되고, 그동안 화단을 장악하던 신고전주의 화풍도 변화의 물결에 요동치게 되고 '품위 있는 주제'니, '균형 잡힌 구도'니, '정확한 소묘'니  하는 과거의 낡아빠진 허깨비들은 일거에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곰브리치 미술사 부분 인용)


이렇듯 기존 패러다임에 반하는 이상 현상들의 출현으로 기존의 사상은 위기에 부딪치고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는 것은 미술사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인상주의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험을 살아서 맞이한 몇 안 되는 - 모네와 르누아르 정도. - 인상주의 화가로서 그렇게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시도하고 처자식 먹여살리느라 전전긍긍했던 그가 죽기 전에 화단의 인정을 받고 대중 스타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은 정말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마네, 시슬리, 바지유, 피사로 등은 자신의 화풍이 화단에서 받아들여지기 전에 卒하였으니 말이다.


내리쬐는 빛을 쫓아 늘 야외 작품 활동을 하던 그였기에 말년에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 상실이 왔다는 얘기도 영화 같은 얘기지만 사실인 것, 모네야말로 진정한 인상주의의 evangelist였던 것이다! 


사람이 조금만 없었더라면.


인파가 조금만 적었더라면 전시실 중앙의 의자에 앉아 파노라마로 눈 앞에 펼쳐지는 그의 작품을 찬찬히 마음에 묻어둘 텐데, 인파로 인해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참 아쉽다. 다음번에 또 찾게 된다면 아침 일찍 가봐야겠다. 이러한 점 여러분들도 참고하시길.



이 멋진 작품을 방안에 붙여놓고 매일매일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이제 지하 2층 기욤-발테르 컬렉션을 구경하러 간다.




가장 관심 있었던 작품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의 '목욕하는 긴 머리 여인' 작품.


르누아르 - 목욕하는 긴 머리의 여인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고전적인 방식으로 인물 자체의 묘사에 보다 충실하여 그린 것으로 그의 말년의 화풍을 읽을 수 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도 보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누구든 자신의 분야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변화 발전시켜야 생존할 수 있는 법. 

영원할 것 같던 인상주의 화풍도 20세기 초가 되니 유행에 뒤쳐지게 되고, 그도 이처럼 생존을 위해 대상을 뚜렷하게 묘사하는 과거 시대 화풍을 일부 재생한 것이 아닐까. 


지하 2층 갤러리


피아노를 치는 소녀들을 자주 그렸던 것 같다. [Young girls at the piano] 작품들이 연달아 걸려있다.

다른 한 편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보았다. 그 작품이 이 작품에 비해 윤곽선이 더 또렷하다.


르누아르 작품들


그리고 대번에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그림이란 걸 느끼게 하는 작품들. 

앙리 마티스 작품들


야수파의 거장답게 붉은색, 노란색 등 원색의 사용이 특징적이다. 

(걸어서 미술관속으로 4.퐁피두 센터 편을 읽어보시길요.^^)


마리 로랑생의 작품들 -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右)


다음에는 마리 로랑생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마리 로랑생은 1일차에 썼듯 기욤 아폴리네르가 사랑했던 연인이지 만인의 여인이기도 했다. 우리의 바람둥이 피카소도 관심 갖던 여인. 

작품에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터치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측의 그림은 샤넬을 그린 유일한 초상화라고. 그런데 필자 취향은 아닌 듯. 패스!


다음은 다소 큰 작품으로 드랭이라는 야수파 화가의 [아를르캥과 피에로]라는 작품이다.

드랭의 작품


보기에 둘 다 피에로 같은데 표정이 밝지 않다.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떠맡았을 때의 표정이 이런 표정이 아닐까? 

광대짓의 고달픔이 얼굴에 드러난다. 사막을 배경으로 채택한 것도 뭔가 삭막하고 외로운 처지를 표상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윽고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진열된 곳으로 이동한다.

모딜리아니 작품들


그의 특징적인 인물화를 볼 수 있다. 대체로 눈을 감은 인물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왼편의 여인은 필자를 보고 있길래 흠칫 놀랐었다.

정말이지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장본인이 또 모딜리아니 아니겠는가. 

찢어지게 가난해 임신한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야만 했고 차디찬 골방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했던 그.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그는 인물화를 많이 그렸는데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의 초상화 스타일을 선호하는 고객이 별로 없었던 거다.

찢어진 눈에 긴 얼굴을 한 초상화 그림을 당신 같으면 주문하겠는가. 간혹 눈동자를 그리지만 또 동공이 없다.

"내가 추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닌 무의식이다"라고 말하며 빈 동공이 무의식의 세계 - a.k.a. 아무 생각이 없는 -를 표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던 화가. 가난에 그리고 술과 마약에 쪄들어 짧은 생을 살다간 그가 처량하다.  


인물의 앉은 자세라던가 윤곽선은 세잔의 영향을 받았다. 아 현대 미술의 아버지 세잔!

(세잔의 작품세계는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에서 정말 제대로 경험하게 된다. 마을 전체가 세잔을 오마주하고 있었다.

아 생 빅투아르산이여. 세잔이여!


루소 - 쥐니에 신부의 마차


위 작품은 앙리 루소(Henri Rousseau)의 작품이다. 사막의 [잠자는 집시] 작품으로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미술 공부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인물로 당대 화가들에게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장본인이다. "미술 공부 제대로 해본 적 없지만 내 작품 세계 어때?" 이런 거다. ㅎ


동화적인 느낌이 나는, 마차 밑 바퀴 사이에 검은 강아지는 왜 그곳에 앉아 있니. 신부가 안고 있는 동물은 원숭이인가. 재미난 작품이다.



이렇게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든 작품을 둘러보았다. 


모네의 작품을 차분히 앉아서 감상하고 싶었지만 인파로 인해 조용한 관람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일찍 발걸음을 옮겼다. 다소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정말 고대하던 시간이었건만. (한 시간도 채 관람하지 않았다!)


금번 파리 여행지 선정에 있어 끝까지 고민했던 장소가 모네의 '지베르니'였다. 모네가 말년을 보냈던 그 곳에서 손수 가꾼 일본 정원을 감상하고 연못도 보고 그의 화실도 들여다보고픈 마음이었지만 일정상 다음으로 미루고 대신 오랑주리에서 조금이나마 느껴보기로 했던 것인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나온다.


튈르리 정원이 또다시 반겨준다.


p.s.인파가 적은 시간에 관람하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잔잔하고 평화로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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