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인류 역사상 창작 활동이 멈췄던 적이 있을까? 화가도, 음악가도 아니며 스스로가 예술과는 전연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매일같이 창작을 한다.
Tears for fears의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 1982
창작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아니다. 가령 당신이 어릴 적 벽에 그은 낙서, 열심히 적은 일기나 지인들과 사적으로 주고받은 편지도 '창작물'의 일종이며, 로컬 음식점에 방문해 음식과 주변 환경이 아름답게 나오도록 찍은 사진도 당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담긴 '창작물'이다.
서점에 <안네의 일기>가 책장에 꽂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당신의 일기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일 만한 작품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다른 문제지만..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인간의 제1의 목표는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이다. 아무리 살아생전 인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위인이라도 신진대사가 멈춘 사람에게 다음 단계는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음식을 섭취하고, 수면을 취하는 것은 살기 위함이다.
우리가 영양소를 맞춰 끼니를 해결하고, 잘 자고, 휴식만 잘 취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생명은 유지된다. 여기까지는 동물들과 같다. 하지만 인류는 동물과 달리 '불필요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랫말을 짓는다.
도대체 왜 인류는 태고적부터 이런 '비효율적인 행위'를 몇 백 만년 동안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시나 소설을 한 권 쓰고, 100호짜리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대도 수명이 1개월쯤 늘어나지 않는다. 작곡을 하고 노래를 짓는다고 있던 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창작 활동에 골몰한 위대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없던 병까지 얻었다.
그럼에도 인간이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고, 조형물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창작 활동은 전부 불필요한 행위로 보아야 할까? 인류가 끊임없이 창작하고,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창작하고 싶은 마음'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TOTO의 <Africa>, 1982
일반적인 생태계의 질서에 따르면 인류의 창작 활동은 철저하게 '낭비'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먹잇감을 구해 먹고, 천적을 피해 어렵사리 찾은 보금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최선이다.
개나 고양이는 거울을 봐도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은 거울을 비춰 보며 스스로를 자각한다.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차별점이다. 인류는 수백 만년이 지나며 점차 뇌용량이 진화함과 동시에 고차원의 사고가 가능해졌다.
집비둘기나 수달, 사자와 같은 야생의 동물들에게는 우리가 글을 쓰고 음악을 짓고 작품을 만드는 것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도태되어 굶어 죽기 딱 좋은 행동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유일한 동물로, 지극히 비효율적인 창작 행위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존재 가치를 입증한 결과물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이것을 '문화'라고 부르면 적절할 것 같다.
아마도 '창작하고 싶은 마음'은 인류가 유한한 세계에 태어난 유한한 존재임에도,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 문화를 만들고, 먼 후대에까지 무한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인간 본성(人間本性, human nature)에서 온 것은 아닐까?
우리가 수백, 수천 년 전에 만들어져 낡고 바래 이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먼지 쌓인 물건들만 가득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끊임없이 찾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