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편두통이 잦아서 따로 처방받는 약이 있다. 문제는 신경과에서 처방을 받아야지만 구할 수 있는 약이라 약이 바닥났는데 급성 두통이 와 버리면 재 처방을 받을 동안에는 헬 게이트가 열린다는 점이다. 내 두통 강도는 그만큼 세다. 두통이 나에게는 응급상황인 만큼 이번에 마음먹고 기존의 멀던 병원에서 가까운 곳의 신경과로 옮기기로 했다.
이 부근 1.5키로미터쯤의 반경 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신경과인데다, 원장이 진료를 잘 본다고 소문이 났던 터라 한 달 쯤 기다려서 겨우 첫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원장은 다른 의사들과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더 많이 알고 더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기 보다는 환자인 나를 한 인간으로 대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약간 희끗했던 그 의사에게서는 왠지 모를 ‘온기’가 느껴졌다. 오래간 만이었다. 환자를 사물 바라보는 듯한 태도로 접근하는 다른 많은 의사들과는 다른 사람을 만나서 기분은 좋았다.
그러나 온기가 충만한 그 분 덕분에 나는 제대로 된 현타를 경험해야 했다는 게 함정이다. 의사 분은 시간을 들여 내 건강상태를 매우 디테일하고 꼼꼼하게 체크했고 그래서 나는 그동안 앓았던 병력을 모두 얘기해야만 했다.
“두통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
“아주 오래 전부터였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한 달에 아픈 횟수는 얼마나 되고 강도는 1부터 10 사이에서 어느 정도 되죠?”
“적으면 2~3회 많으면 4~5회 정도 되고 심하면 8~9정도 강도예요.”
“잠은 잘 자는 편이고 혹시 우울증을 앓고 있진 않은가요? (우울증도 두통과 관련이 있답니다.)”
“불면증이 약간 있고 우울증도 있지만 요즘엔 심하지 않아요.”
(눈이 약간 커지시더니)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조금 생각하다가) 아니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의사 분은 우울증이라는 대목에서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다. 우울증이 시작된 시점이 언제부터였는지, 정신과에는 가 본적 있었는지, 갔다면 약 처방은 받았었는지, 지금의 우울증 강도는 1부터 10 사이의 숫자중 어디에 해당되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암 수술 시기는 언제였는지 등등, 여러 가지를 자세하게 물어봤는데 마치 밖에 여럿 대기하고 있던 다음 환자들은 잊어버린 듯 했다. 그리고 재차 물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나요?”
나는 갑자기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 당시엔 회사가 너무 다니기 싫었고 그래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출근을 안 하니까 훨씬 안 우울합니다. 정말이예요.”
의사는 잠시 아무 말 없다가 다른 병력이 더 있는지 물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하체 림프부종이 있고 갑상선 저하증이 있어서 약 먹고 있습니다. 퇴행성 목 디스크도 있는데 아직 수술할 정도는 아니래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다 살필 수는 없었으나 마스크 위로 보이는 의사의 눈빛은 점점 나를 불쌍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한참 타자기를 두들기던 그는 약 처방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마지막으로 내 한쪽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약 잘 챙겨먹고, 힘내면서 살아봅시다.”
헛.
웃을 수도 없고 웃음을 참기도 힘든 상황이었으나 그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중저음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는 추운 날씨에 찾는 숄처럼 한쪽 어깨에 와서 살며시 닿았다.
모처럼 인간적인 의사를 만난 덕분에 약간의 기분전환을 할 수는 있었으나 이번 진료를 계기로 타인들이 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 그렇게 불쌍한 여자였나? 현타가 왔다.
그런데 난 지금의 내가 진심으로 그리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출근길을 반복하며 나설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내가 훨씬 더 불쌍했었다. 이 얘길 해줄 걸 그랬나. 의사에게 말했던 대로 회사 안나가고 아무 간섭 없이 일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르는데. 비록 회사 시절 팀장으로 받았던 월급의 반도 채 못 벌고 있지만, 그래서 쇼핑 위시리스트를 장바구니에 담아만 놓고 한참을 쳐다볼 때도 있지만, 마치 내 몸보다 훨씬 작은 상자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숨도 제대로 못 쉬면서 살던 예전의 삶보다 지금이 난 훨씬 좋다고. 조금 가난하지만 느리고, 고요하고 편안한 지금은 마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한복판에 서있는 느낌과 같다. 비록 눈부시게 화창하고 민트 빛을 내뿜는 아말피 해안도로 위에 있는 것 같은 조증(?)은 아닐지라도 예전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건 분명하다. 반 강제로 치열하게 출퇴근했던 그 땐 마치 하데스의 지하세계에 갇혀 사는 기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려 혈안이 되어 있고, 매일같이 사람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장면을 목도해야만 하는 그 지옥의 세계 말이다.
다음에 병원 예약일 땐 따뜻한 의사 분에게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얘기해줘야 겠다. 요즘은 종종 행복하기도 하다고. 나름 잘 살고 있답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