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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Oct 05. 2022

줏대없는 비혼의 병가

 죽음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던 순간이 이틀 전에도 있었다. 한 쪽 머리에 납작하고도 날카로운 무언가를 밀어 넣은 듯 왼쪽 머리 전체가 숨을 못 쉬도록 아팠을 때, 그 상태에서 억지로 약을 먹고 이후로 해 질녘까지 토했을 때,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 속에 소량 남아있던 약까지 다 토해내고 더 이상 나올 게 없는데도 연신 헛구역질을 하다 간신히 멈췄다. 그렇게 아픈 건 처음이었다. 


 경각심과 함께 공포심과 두려움이 덮쳤다. 이렇게 점점 나빠지면 어떻게 하나. 부모님은 많이 늙으셨고 곧 나 혼자 남을 텐데, 그런 세상을 내가 헤쳐갈 수 있을까 등등, 다시 하지 않으려 했던 비관적인 생각들이 밀려왔다. 꾹꾹 밟아놨던 생각들이 다시 고개를 드니 그들이 나에게 본격적으로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쳐다보기도 싫었던 얼굴들. ‘그래서 너, 어떻게 살래.’,  ‘당차지도 않은 어른아이가 그렇게 살 수 있겠어?’ 

 조롱하는 얼굴들, 진짜 못생겼다.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애정 어린 손길, 몸과 몸의 접촉 없이 마음만으로 원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나를, 내가 상대를 마음 놓고 만질 수 없는데 그 사람에게 엄마와 같은 애착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 부모와는 다르게, 인생의 반려자는 우정과 플라토닉만으로는 만들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비혼주의는 과연 이 나라에서 현실성이 있는 대안인 걸까? 우리들 만의 커뮤니티 안에서 그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어쩌면 막연한 판타지일지도 모른다. 전주의 어느 마을에 조합처럼 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는 그들은 정말 그렇게 살고 있는 걸까.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해 볼까.)     


  반드시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반려자와 같은 애인을 가질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 이 나라에서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보잘 것 없는 모습을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 반대로 그 사람이 한없이 못났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보듬어 주고 싶은 사람.

 아, 또 다른 판타지로의 귀결인가. 그러나 현실을 자각컨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바로 그런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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