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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an 12. 2023

수영하는 자유인

수영을 멈출 수 없네요.

 현재 강습 당하고(?) 있는 우리 반 수영 강사는 사디스트이다. 숨이 넘어갈 듯, 벌겋게 익은 수강생들의 고구마 얼굴들을 그가 워낙 대놓고 좋아하는 느낌이라 그렇다. 이어서 그는 한 차원 더 높은 고강도의 훈련을 계단식으로 주문하는데, 공포에 질린 우리의 얼굴 따위는 아랑곳도 하지 않는다. 잠깐 덜 힘든 운동으로 전환하려는 척 하다 오히려 더 힘든 운동을 시키고는 경악하는 표정을 보고 혼자 좋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자유형 세 번째 팔에 호흡, 속력 70%, 인터벌 1분20초, 일곱 바퀴”

 (난 이것만 하고 나서도 사실 집에 가야 한다.)     

 “앞서 힘든 운동을 했으니 한결 수월한 걸 합시다. 자유형 네 번째 팔에 호흡, 속력 80%, 인터벌 1분20초 네 바퀴, 흐흣..”


 처음엔 웃어주던 수강생들은 이번엔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는 마치 화목난로 안에 들어가서 불타고 있는 듯한 우리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스포츠 심장을 가질 수 있어요.”     

 상급반에 입성한지 두 달째 되었다.


 몇 년 전 한 호텔 수영장에서 마치 한 마리의 우아한 듀공(돌고래라고 표현하기에는 그 여인이 무척 하얀 피부를 자랑했으므로) 처럼 유영하는 어떤 여인을 본 이후로 나도 저렇게 물이 있는 곳에서 아름답고(?) 재미있게 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어릴 적 잠깐 배웠던 초급 수영으로는 여유롭고 우아하게 물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배우기로 했던 수영이었는데, 헉헉대고 찌질하게 코를 흘리며 돌고 있어도 모를 정도로 힘이 든 이걸 정말 계속 해야 하는 건지 요즘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는 수영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우아한 듀공처럼 수영할 수 있는 레벨이 되었는데도 멈출 수 없는 이유.


 3년 전 자궁내막암 수술을 받았었다. 수술 과정에서 여러 개의 림프절을 절단하여 떼어낸 이후 골반부위에 림프부종이라는 또 다른 병을 얻었는데 이 지독한 병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 어떤 운동도 할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장난하자는 건가, 우주에 나가 살지 않는 이상, 중력의 영향을 받지 말고 살라니, 30분 이상 걷는 운동조차 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나서 유일하게 중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 우주를 제외하고는 물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수압은 부종 부위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어 실제로 물속에 있는 동안은 압박스타킹을 신지 않아도 몸이 붓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난 ‘듀공의 자태’를 원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수영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이자,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닌, ‘정상인’이 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상시엔 압박스타킹을 신고 다녀야 하지만 수영을 할 때만큼은 압박스타킹에서 해방 된 채, 맵시 나는 수영복 한 조각(?)만 걸치고 물속을 마음껏 누빌 수 있다. 수영할때에 내 몸은 가장 자유로웠다.     

 

 두 번째는 수영한 이후로 몸의 실루엣이 서서히 변해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고기, 버터. 케익, 각종 튀김류 등의 고콜레스테롤 음식류를 좋아하는 편이라 항상 체중유지와 몸매관리가 고민이었던 내가 수영을 빡세게 한 이후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수영을 해도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러블리한 사디스트 강사가 대신 대답해 줄 것이다.

 

“적당히 하면 배가 고파요. 죽을 듯이 해야 입맛이 없어지지요.”


 경험해 본 결과, 이 말은 섬뜩할 정도로 진리였다. 어떤 운동이든 그렇겠지만, 특히 수영은 자기 한계를 시험해 보겠다는 마인드로 접근한다면 돌던 입맛이 사라지고 살이 쭉쭉 빠질 것이다. 고강도로 10분간 하는 운동으로 저강도 운동 50분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고강도 수영을 잠깐씩 쉬는 시간 제외하고는 매 강습때마다 30분간은 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이는 런닝 머신 위에서 150분간 가볍게 뛰는 운동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어쩐지, 런닝 머신에서 30분간 매일 뛰어도 살이 안 빠지더라.

 

 거기에다 물이 무겁기 때문에 헬스장에서 하는 근력운동 못지않은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수영에서는 무겁디무거운 물을 잘 잡고 잘 밀어내는 훈련을 거듭 시키기 때문에 아령을 드는 운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수영을 1년 정도 꾸준히 하면 팔과 몸에 잔 근육이 붙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은 팔 다리 뿐만 아니라 코어에도 힘이 있어야 잘 할 수 있는 종목이다. 몸이 물 속 누운 자세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에도 십 일자 근육을 만들 수 있다. 십 일자 배 근육은 이효리만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말씀.     

 

 세 번 째 이유는 그냥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 되면 먹는 밥처럼, 기계같이 일어나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운동도 습관으로 굳히면 아무 생각 없이 매일 센터로 향할 수 있다. 내 경우는 샤워하고 머리도 감아야 하기 때문에라도 간다고 얘기한다면 너무 영혼 없어 보이나. 샤워도 센터에서 하기 시작하면 왠지 센터에서만 하고 싶어지는 그런 거, 잠도 자던 곳에서 자야 편한 것처럼 말이다.      

 

 근육질 마른 몸으로 변해가는 수영 자유인, 앞으로 수영에 대한 얘기를 마음껏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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