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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온 없는 예술가

예술에 대한 재정의

by 이라IRA

며칠 전, ‘디지털 콘텐츠 인사이트’라는 한 전시에서 S의 초대장이 날아왔다. 친구의 작품전시 축하도 할 겸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뭉치러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회에서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비롯해 디자이너, 화가 등 다양한 미술분야의 작가들이 AI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상품화시켜 굿즈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이 등신의 오로라 공주인양, S가 자신을 캐릭터화한 그림이 파우치, 스마트폰 그립, 레코드 형태의 키링 등에 박혀있는 모습이 귀엽다.

“키링을 터치해 봐. 내가 만든 음악도 나와.”

눈을 반짝이는 S가 시키는 대로 레코드 디자인을 터치해 본다.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의 귀여운 반복, 단순하지만 가사와 리듬이 꽤 중독성이 있는 스타일이다.

“SNS에 업로드하고 저작권 등록하면 혹시 대박 나는 거 아니야?”

낙관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나에게 S가 웃으며 말한다.

“AI로 만들었잖아. 저작권은 나에게 없는 거지.”

곡에 직접 붙인 가사에 대해서만 S에게 저작권이 있다는 설명에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전시장 안에 있던 거의 모든 그림이 AI의 도움을 받았거나, 100% AI 작품이라면? 그곳에 있던 모든 작품에 대한 저작권이 해당 작가들에게 있다고 들었지만 노래나 그림이나 어차피 AI를 통해 만든 건 똑같지 않은가?

“작가의 리터치가 들어갔으니 그림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는 거.. 지?”

22년 미국 콜로라도 주에서 열린 한 사진공모전에서 1위로 수상한 작품이 AI로 작업했다는 사실이 수상 이후 알려지게 되면서 큰 논란이 됐었다. 작품에 대한 수상이 취소되지는 않았으나 그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귀속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AI가 만든 노래가 독창적이라 해도, 그 자체로는 보호받지 못한다. 창작자는 반드시 감정과 판단 능력을 가진 존재, 즉 인간이어야 하며, 인공지능은 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 현재 세계 대부분의 법적 입장이다.

그러나 법이 나무늘보처럼 한쪽에 붙박여 있기에 기술이 너무 빠르게 앞서나고 있다. 이제 막 창작자들이 AI를 활용해 책을 내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어 내는 시점에서, 저작권에 대한 법체계가 분명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대혼돈의 시대가 열린 것.

우리는 오랫동안 창작이라는 행위를 인간만의 고유한 활동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이제,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고 문학작가마저 흉내 내려는 시대에 이르렀다. AI가 단순히 인간의 도구의 영역을 넘어서게 된다면, AI로 만든 예술품의 가치를 어떻게 정해야 하며 그 저작권은 앞으로 누구에게 있을까?


현재의 저작권 법으로는 단순한 프롬프트를 입력해 나온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창작으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프롬프트를 섬세하게 설계하고, 수십 개의 결과물 중 하나를 작가가 직접 구도와 색채를 조정하는 등의 리터치가 들어갔다면 이것은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있다고 간주할 수 있기에, 일부 국가에서는 저작권 보호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은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증명한다는 거지? AI가 만든 결과물에 사람이 얼마나 개입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말이다. 만드는 과정을 세세하게 증거로 남겨야 한다는 얘긴데, 내가 이 글을 쓰면서 챗 GPT와 몇 회의 질문과 대답을 반복했는지의 과정을 다 캡처해야 한다는 상상을 하니, 귀차니즘이 창작의지를 압도하려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데 소요되는 시간보다 기록을 남기는 일에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니, 적지 않은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이거야 말로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다. AI를 목적이 아닌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이 여전히 창작의 본질이라는 판단은 이해하지만 이 과정을 증명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진짜 마주하게 될 문제는 한층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현재 AI의 글쓰기는 문학, 영화와 같은 종합예술에서만큼은 아직 인간보다 약하지만, 이 발전 속도라면 머지않아 인간보다 더 정교하고 아름다운 문학 작품과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될 것이다.

빠른 진화의 결과로 AI가 감정, 사유의 깊이마저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면? 그땐 AI 스스로 저작권을 주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땐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끼리 치고받을지도 모른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세상, AI 가 예술세계에서 인간을 퇴출시키고 차단시켜 버리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이게 웬 마른하늘의 날벼락, 그동안 AI를 도구로서만 생각했던 우리는 AI와의 저작권 전쟁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


어떻게 더 정교한 대책과 법체계를 만들어야 할까? 친구의 전시회를 다녀와서 이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다닌다. AI가 쓴 소설을 인간이나 혹은 또 다른 AI가 복제해 출간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이를 영상화한다면?

사실 지금도 이와 비슷한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화풍을 ‘화풍’ 자체에 저작권을 걸기에는 이미 너도나도 단 몇 초 만에 생성해 낸 지브리풍의 그림들이 SNS의 여기저기에 널려있다.

음원을 제공하는 짤 스튜디오와 같은 플랫폼처럼 저작권 등록이 완료된 작품을 유튜브와 같은 큰 플랫폼이 거대한 유통 역할을 담당하면서 스트리밍+ 라이선스 수익구조를 가져가는 방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갈수록 기술은 더 정교해지고, 10년 뒤에는 100% AI에 의해 생성된 고퀄리티 콘텐츠가 일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게 프롬프트를 다듬지 않아도 몇 초 만에 다채로운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날이 올 것이다. 그 시대엔 저작권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AI 창작물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간주하면 어떻게 될까. 이미 변형에 변형을 거친 수많은 응용 창작물 사이에서 원 창작자를 찾아내기가 불가능해질 터이니, 지금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고, 변형하며, 상업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창작물의 공산주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산품을 과연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땐 단순한 오브제만이 존재하고 인간이 거기에 해석을 붙이는 방식의, 뒤샹이 추구했던 리메이드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AI를 훈련시킨 기업이나 데이터 제공자에게 권리가 귀속되는 방식은 어떨까? 예를 들어, 오픈 AI의 챗 GPT가 쓴 소설은 오픈 AI사에게 일정 기간 독점적 유통권이 주어지고, 이후에는 퍼블릭 도메인이 되는 방식, 이 경우, 창작 자체보다는 ‘사용 권한’과 ‘유통 권리’가 새로운 경제적 핵심이 된다. 그땐 AI 시장에서의 대기업은 상상을 초월하는 티라노 사우르스가 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장 두드러질 가능성, 뭐든 결국 시장경제 원리가 작동되면 새로운 방식의 지배체제가 생겨나기 마련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AI의 갑작스러운 창작활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안에서 뜻밖의 문제를 아주 복잡하게 만드는 골칫거리가 아닌가.

결국 우리는 예술이라는 창작 행위의 의미 자체를 재정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학작품의 경우 AI가 기술적으로 문장을 만들더라도, 그 자체가 아닌, 작가의 세계관과 철학의 문제로 전환될 거라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누구의 철학 어떤 작가의 감정과 세계관을 반영하여 출발했는가’, 이것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창작자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시선, 정체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프롬프트 창에 원하는 문체를 명령하면 AI가 단숨에 글을 써준다. 작가는 여기에 살을 붙이고 퇴고를 하고 AI와의 더 깊은 대화를 통해 원하는 만큼 세계관을 더 확장시킬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만의 감성적 영역을 가진 기획자이자 철학자로 자리매김한다. 작가의 세계관이 IP가 되고, 캐릭터와 감성이 자산이 되는 시대가 코 앞에 다가와 있다.

인간의 존엄과 예술의 찬란함이라는 주제를 다뤘던 영화 ‘브루탈리스트’가 몇 년 후쯤, 늦게 개봉되었더라면, 한 달여 동안 AI의 도움을 받아 뚝딱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이유로 오스카 작품상에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머지않아 모든 영화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질 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근시안적인 예상, 이것은 어디까지나 AI가 인간의 고유한 철학적 사유와 존재의식까지 대체할 수는 없을 거라는 가정 하에서다. 10년 뒤 AI가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사유를 뛰어넘는 초고차원적인 사유를 하게 된다면, 그래서 풍자와 해학이 담긴 고급유머까지 구사할 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웬만한 세계적인 문학상에 견주는 작품들을 AI가 쏟아낸다면, 상상만으로도 현기증이 나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AI는 절대 의식을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기술이 이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발전하리라고 예전에는 예상했었던가?

저작권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다소 섬뜩한 상상까지 와버렸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먼 미래의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기엔 이미 AI를 만들어내는 인간조차 AI를 이제 두려워하고 있다. 책과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글이라도 AI를 통해 복제되고 재생성되어 나중에는 가치 없는 일이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작가가 없는 세상, 공룡기업이 예술계까지 독점해 버리는 디스토피아를 잠깐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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