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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순간

<친애하는 X>가 만든 감정의 함정

by 이라IRA

‘내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르게 하소서.’

요즘 가장 핫한 드라마 ‘친애하는 X’에서 백아진의 이 대사.

웹툰 원작인 이 드라마는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초반부터 주인공을 ‘소시오패스’ 라고 소개하며, 소시오패스의 정의까지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면서 관객을 당황시킨다. 당황하면서 동시에 ‘이 드라마 뭐지?’ 하는 흥미를 갖고 초반부터 몰입해서 보게 만드는 상술(?)을 마구 펼치는..


소시오패스, 주의의 선한 사람들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도구로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버리면서 여기에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비정서적이고 냉담한 반사회적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다른 빌런들을 하나씩 처단하고 죽이는 일련의 과정들이 이 드라마에서는 첫화부터 아주 시원시원하고 일사천리(?)로 전개가 된다. 그 처단된 빌런들이 바로 작품의 제목인 ‘친애하는 X’ 들인 것.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죄 없는 선한 다른 희생자들을 만든다는 점이지만 백아진은 소시오패스답게 이 희생자들을 무시하고 결국엔 배우로써 톱스타까지 되는데 성공한다. 자신을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게 그녀의 목표였던 것.


그런데 이 과정들이, 그리고 이 캐릭터의 성공과 복수가 한편으로 통쾌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드라마를 보면서 신기하고 또 소름끼쳤던 건, 소시오패스인 주인공에게 어느새 감정적 동화가 되어있었다는 점이었다.


백아진이 ‘공감되게 만들어진 이유


백아진은 기본적으로 비정서적이고, 냉담하고 타인을 밥먹듯이 조종하는 성향을 보이는 전형적인 소시오 패스이다. 그러나 이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또다른 빌런들이 더 악질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폭력적인 부모,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을 어떻게든 팔아먹으려는 아버지, 똑같이 폭력적인 계모를 비롯해, 학교에서는 학교대로 아진을 괴롭히는 또다른 미친년 등 모든 상황이 ‘이보다 더 극악할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 괴물이 되지 않고서는 그냥 죽으라는 얘기잖아?

이 악마 같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백아진이 아무리 소시오패스라고 한들 관객의 입장에서는 ‘상대적 도덕성’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상황, 관객은 이 쓰레기 같은 자들을 처단해주는 백아진을 오히려 ‘자신들의 아군’으로 받아들이는 심리가 생기기 시작하는 거다. 즉, ‘소시오패스의 변명문’을 드라마가 서사적으로 제공한 셈. 설마 이 작품이 이걸 의도했던 걸까?

지옥 같은 곳에서 쓰레기 같은 자들을 밟고 올라서서 사회적 위치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 어떤 서사보다도 통쾌한 쾌감을 느끼는 관객은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무고한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게 된다. 그저 ‘응징서사’와 ‘성공의 서사’에만 열광하게 되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

현실에서 억울하고 답답함이 많은 관객에게는 대리만족을 주는 데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 관객 입장에서는 윤리보다는 해소에 더 열광하고 점점 백아진에게 감정적으로 동화되는 위험천만한(?)경험을 하게 된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악마 같은(?)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늘 또 새로운 에피소드 두 편이 나왔다는데, 무의식적으로 ‘누명 뒤집어 쓰고 감옥 들어간 그 사람, 나와서 복수하려고 하면 어쩌지?’ 하는, 소시오패스 백아진에게 마음이 완전히 기울어져 있는 나를 알아채고서 놀라고 있는 중이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그러나 ‘응징서사’에만 몰두한 나머지, 이 함정 역할을 하는 감정적 장치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글도 쓰고 유튜브 영상도 만들었으니


많이들 시청바랍니다! ㅋㅋ


https://www.youtube.com/watch?v=FgdoFVhfa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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