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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ul 16. 2020

동반자와 자유연애

 

 브런치의 어느 글에서 ‘자유와 외로움은 짝 지어 다닌다.’ 는 문장을 보고 마음 안에서 뭔가가 내려 앉았다.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던 걸 누군가가 콕 집어 확인시켜 주니 나는 스스로 외로운 인생을 택한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갑자기 씁쓸해졌다. 

 

 난 40대 싱글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다. 결혼은 부담스럽다. 참 부담스럽고 거북한 제도이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정도와 깊이와는 나에겐 상관 없었다. 여성으로서 가부장제 속으로 편입되고 만다는 사실이 싫은 걸 떠나서 한 남자, 한 여자만을 평생의 단 하나의 이성으로만 서로 강제해야 한다는 약속이 난 좀 우스웠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게 되나?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사람 마음을 말 뿐인 서약 하나로, 혼인신고라는 제도 하나로 정말 다스릴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있느냔 말이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족’으로서 말이다. 배우자는 가장 가까운나의 가족이 될 것이다.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일일이 상의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테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유대관계는 더 끈끈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혹은 그녀가 가족임과 동시에 계속 애틋한 연인일 수 있을까?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렇다고 자신 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난 사람이 나이가 든다고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본다.  40대에도 50대에도, 심지어 7~800대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설레고 싶어하는 마음, 즉 연애감정은 살아있는 법이다. 마음만은 청춘이라 하지 않던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 하에 숨기고 살아야 한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어쩌면 자녀가 태어나는 순간 먹고 사는 일이 고달파져서 그런 감정 따윈 생각할 여유가 없어져 버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감정이라고 없어져 버리는 건 아니란 말씀. 

 아무튼 이미 서로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 부부에게 있어서 연애감정이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짓눌리고 묵살되는 가장 억울한 감정이라고 해야겠다. 이미 가족이 되어버린 배우자만을 이성으로 바라보도록 강요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배우자는 이미 내 자매, 형제처럼 되어 버렸다. 웃지 못할 아이러니, 결혼해 본 적 없었어도 웃지 못할 부부의 속사정이 처음부터 난 걱정되었다. 정확히 결혼 제도의 이런 점이 난 싫었다. (사실 이 밖에 싫은 점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러나 최근에 몸이 크게 아프면서 늙어가시는 부모님 외에는 마음 놓고 내가 투정부리거나  마음을 온전하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자 일종의 위기감 같은 것이 생겼다. 아, 부모님, 특히 엄마가 돌아가신다면? 그 이후 내 멘탈에 대해서 요즘 들어 부쩍 많이 생각하게 된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어도 지금처럼 혼자 꼿꼿하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사실 자신이 없어졌다. 


  음, 20세기, 프랑스에는 한 쌍의 지적이고 자유로운 부부가 있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와 장폴 샤르트르 ( Jean Paul Sartre). 실존주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문학인 부부. 이 둘은 서로를 ‘정신적인 동반자’로 규정짓고 평생 각자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면서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가장 가까운 소울메이트라 생각하고 평생동안 가장 사랑했다. 나는 여기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 아니라 ‘그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자유를 주었기 때문에 서로를 가장 사랑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둘은 이별 없이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이해했고 이를 존중해 주었다.  당시 이 부부의 자유로운 연애 생활은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금이라도 분명 화제가 됐을텐데 그 시절엔 오죽 했을까. 이 커플, 정말 간지난다.

 

 이미 결혼제도의 모순을 간파하고 인정한 유럽국가의 사람들은 결혼제도를 거부하고 ‘동거혼’으로 사는 커플이미 전체의 50%를 넘은 지 오래다. 우리는 아직 기가막힌 수준으로 보수적이어서, 동거커플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다.

 흠, 나도 보부아르 언니처럼 산다고 선언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바보가 아닌 이상 선언은 하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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