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작품이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토록 어둡고 잔혹하며 끔찍한 사랑의 이면을 다루면서도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예술을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가 거실 벽 한 면에 주르륵 꽂아 놓았던 추천도서 전집 목록에 이 '폭풍의 언덕'이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진짜 미친거 아니야? (엄마 말고 도서 선정한 사람 말이다.) 이 소설을 초등학생용 권장도서목록으로 꼽다니.. '폭풍의 언덕'은 애들이 읽어서도 안되며 읽더라도 절대 이해하지 못할 작품이다. 난 다 컸던 20대 때도 이 작품과 작품을 쓴 에밀리 브론테를 결코 이해하지 못하고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30대 중반이나 되었을까, 다시 읽었던 이 소설에 완전 꽂혀서 현대에 와서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도 죄다 찾아보고는 했었다. 그 때 새삼 느꼈던 충격이란..
소설 뒤편으로 갈 수록 히스클리프가 점점 더 끔찍하게 싫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뼈 속까지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더 충격을 받았었다. 그것은 인간의 악마성, 자기혐오, 애증을 넘어서는 파괴적인 사디즘 등에 모두 공감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면, 내 사랑의 이면에도 이런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점점 더 추해지고 악마적으로 변해가는 히스클리프에게 마음이 멀어지면서도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슬픔과 연민의 감정을 같이 느꼈다.
영화는 안드레아 아놀드(Andrea Arnold) 감독 2011년작과 피터 코스민스키 (Peter Kosminsky) 감독 1993년작을 같이 봤지만 개인적으로 2011년작이 더 좋았다. 히스클리프의 광기와 악마성을 소설에 비해 너무 약하게 표현한 점이 아쉽지만 마치 한 편의 슬픈 뮤직비디오를 본 것 처럼 힐링이 되는 게 신기했다. 그만큼 영상을 너무 아름답게 담았기 때문인가. 소설은 '넬리'라는 하녀의 시선을 통해서 모든 게 그려지지만 영화 속 카메라는 히스클리프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듯 처리가 되어 히스클리프에게 좀 더 감정이입을 했던 것 같다. 그의 애절한 마음과 자신을 버린 캐서린에 대한 분노, 절망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사진출처 Literary Hub
앞 서 얘기했던 것 처럼 소설은 하녀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기 때문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 사이에 있었던 아주 소소한 일까지 묘사하기는 어려웠지만 영화는 히스클리프의 시선과 감정선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여서 어린 시절부터 나누고 쌓아온 두 인물의 교감과 유대감을 세심하게 담아 내었다. 두 사람의 영혼이 그토록 단단하게 묶일 수 밖에 없었던 과정과 이유를 소설보다는 오히려 영화 속에서 더 공감이 되기도 했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여 주인공 캐서린에 대해 마치 '들에 풀어놓고 기른 망아지' 마냥 드센 느낌을 받았는데 그런 면모를 영화에서 조금은 드러내 주어서 기뻤(?)다. 93년작처럼 캐서린을 예쁘게만 그려놓는다면 (줄리엣 비노쉬가 너무 청순해서 이 영화는 에러다.) 캐서린이 했던 대사 중 '나와 히스클리프는 서로 너무 닮았고 우리의 영혼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는 말이 무색해져 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캐서린이 가진 불 같은 성격과 고집, 열정 등을 표현하기에 카야 스코 델라리오 만한 배우도 없다. (난 카야를 너무 사랑한다.)
그러나 영화는 캐서린이 죽고 바로 끝나버려 아쉬웠는데 소설에서 이 부분은 고작 스토리의 중간분량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하긴 이후에도 멈추지 않는 히스클리프의 더 치밀하고 광기어린 복수전을 계속 보여줬다면 영화의 아름다웠던 모든 영상이 빛을 잃게 되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히스클리프의 광기조절장애(?)는 치가 떨리도록 지독했기 때문에.
인간은 어리석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내면의 악마성이 결합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포함하여 무고한 사람들까지 파괴시키고 결국 자신까지 파멸하게 된다. 에밀리 브론테는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소설을 출간했을 당시 너무 음울하고 야만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받으며 한동안 조명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살면서 두 번 없을 사랑을 하면서도 그 사랑을 버리고, 애증을 쌓으면서 이미 버린 사랑에 집착하는 작품 속 인물들.증오의 감정으로 복수를 하며 자기파멸을 겪으면서도 증오를 멈출 수 없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단상,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금씩은 갖고 있는 어두운 면에 대해 브론테는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 작가를 너무 사랑한다. (차라리 제인 오스틴을 사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