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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Sep 26. 2020

 나 인생 종치지 않았어.

 의사들은 암 환자(특히 부인암 환자)들을 ‘어차피 인생 종친 사람’ 쯤으로 여기고 대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술과 치료 후유증에 대해 환자가 사전에 조금이라도 인지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끔찍한 지병인 림프부종이 아무리 환자마다 복불복이라 하더라도 환자 나름대로 최대한 조심이라도 하도록, 혹은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자궁 관련 암 수술 환자들은 특히 다리와 발의 상처를 조심해야 한다. 독을 빼내는 림프절이 하체에서 다수 제거되었기 때문에 하체에 상처가 나면 세균에 바로 감염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사실도 모르고 발에 상처가 난 채로 수영장에 신나게 다녔다. 그러다가 부종이 시작되었다.     

 

 암 제거 수술을 하면 그 부위의 림프 절을 다량 떼어낸다. (림프절에 혹시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찾아내기 위함) 문제는 이후에 생길지 모르는 후유증에 대해 내가 완전하게 무지했다는 점이다.

 

 수술을 받고 퇴원을 하고 석 달 뒤 재진료를 받을 때 까지도 수술 후의 부작용이나 후유증에 대한 주의사항을 담당교수나 주치의에게 단 한 마디도 들은 기억이 없다. 림프절이 절제된 상태에서 방사선을 20회가 넘도록 골반전체에 다 쪼이면 손상된 림프 절이 완전히 망가져 버릴 수도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 그래서 망가진 부위의 림프액이 주위로 새면서 신체부위가 물을 먹은 솜처럼 점점 불어나고 부어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방사선 담당교수에게서도 듣지 못했다. 부종이라는 후유증은 한 번 생기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은 더더욱 몰랐다. 이 모든 것은 사건이 이미 터지고 난 이후 나 혼자 끙끙대며 인터넷으로 폭풍검색을 하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의사들은 내 몸에 나타나는 증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늘어 놓았다.     

 

 부종이 시작된 사람은 절망에 빠진 채 허둥대고 있는데 의사들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너무나도 담담, 평온으로 일관하는 태도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숙명이니까 받아들이고 평생 관리하라니.. 장난해? 오 마이 갓, 내가 마치 그들이 짜 놓은 프로젝트에 꼼짝없이 갇힌 생쥐 꼴이 된 기분마저 들었다. ‘암 환자 아예 불구로 만들어 버리기 프로젝트’.

 그들은 나를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이건 과대망상이 아니야.. 젠장.

 

 수술을 알아보고 있다.  림프부종 관련 수술이 개발 된지 몇 년 되지 않았고 그래서 국내에 이 수술을 할 줄 아는 의사가 몇 없다고 하더라도, 게다가 수술을 해도 완치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성공적으로 수술해 줄 의사를 만나서 하고 말거다.

 

 그리고 앞으로 담당교수를 정할 때 실력이고 나발이고 사람을 가장 우선적으로 봐야 겠다. 환자를 배려하고 필요한 정보는 꼭, 그리고 세심하게 얘기해 주는 사람 말이다. 역시 사람은 직업이 뭐든 간에 자상하고 사려 깊고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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