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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Apr 25. 2021

수술 후 1년- 산들바람이 너무 좋다.

 그 동안 이렇다 할 이슈가 없어 글을 쓰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게을러서였다. 아니 사실 스스로의 삶에 무기력하고 애착이 없어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글은 이슈가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자기가 만든 기획에 맞게 쓰면 되는 거니까. 물론 그 동안 내 삶에 아무런 계획도, 기획도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내 의도대로 잘 실행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누군가 자신이 지금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 한다면 그리 많이 힘들지 않은 상태라고 확신해도 된다. 하소연도 에너지가 남아있어야 하는 거다. 정말로 절망에 빠진 사람은 그런 말조차 하지 않는다. 할 수가 없다. 

 그 동안의 나 자신이 방향을 잃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먼지 같은 존재로 느껴졌다. 누구에게도 힘들고 외롭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러고 있다는 건 이제 다시 살만해 졌다는 뜻일까? 

 

 지독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생계 문제가 아직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직장으로 돌아가기는 죽어도 싫어. 내가 주식하느라 수천만 원을 마이너스 찍고 난 얼마 후 전 회사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침대에서 절망의 몸짓(?)으로 뒹굴거리고 있을 때 때마침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을 보니 X대표님 이라는 네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받지 않았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전화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 본 채 전화를 받지 않았던 이유는 ‘행여나 다시 들어오라고 할 까봐’ 였다. 어떻게 에둘러 거절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만큼 난 직장에 나가 남 밑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는 삶에 질려 있다. 아마 그 질림은 평생 갈 것이다.     

 

 이제 뭘 하든 시간적 자유가 없는 건 하지 못하겠다. 내 시간에 대한 주인으로 살고 싶다. 그래서 창업하는 것도 싫다. 누군가는 이럴지도 모른다. 쉽게 돈 벌려고 하니 주식으로 수 천만원을 날리지? 이런 사람에게는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주식으로 돈을 버는 기술이랍니다. 하지만 그 기술을 포기하지 않고 연마해서 능수능란한 트레이더가 된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황금 손이 될 것이다. 주식은 기술이다. 그것도 아주 고오급 기술! 처음엔 이걸 모르고 도박처럼 하느라 돈을 몽창 날렸었다. 장님이 운전대를 잡는 위험천만한 짓.


 아, 근데 기승전 주식이 되어 버렸네. 어쨌든 그렇다. 이 쾌청한 봄날에 시간 구애 없이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고 독서를 하면서 살고 싶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고칠 수 없는 지병이 생겼다 해도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고 살다 죽을란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면서 사는 삶은 어쩐지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일상과 같다. (응..?) 하지만 그 사람은 유명인이잖아? 매니아 층도 상당히 두텁다. 명성을 얻을 때까지 글을 써도 작가가 아니고 뭔가를 해도 그 무언가가 될 수 없다. 그래도 상관없어. 난 나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다. 이 삶에 나름 만족한다. 이름이 있는 그 무언가는 앞으로 많이 남아 있는 살 날 동안 이루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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