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이다.’, ‘파격적이다.’, ‘충격적이다.’, 영화 ‘바람난 가족’을 보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평들이다. 간혹 ‘불편했다.’는 얘기도 더러 있고 야동이고 쓰레기 같다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야동 쓰레기가 어떻게 칸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을까?) 하지만 영화의 초반부터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심상치 않은 섹스씬을 보고, 바로 들었던 나의 느낌은 ‘이렇게나 솔직하다고?’였다.
사진출처 네이버TV
예전부터 다른 영화 속 대부분의 베드씬을 보면서 항상 첫 번째로 들었던 생각은 ‘저 여자, 정말 좋은걸까?’였다. 진심으로 좋아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건지 의아했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 ‘왜 다 저렇게들 열심히 연기를 해야 하지?’
이런 생각이 들고 나면 내 눈엔 순간 그 장면이 코믹하게 변하고 급기야는 슬픈 장면이 되고 만다. 야한 장면이 코믹하고 슬픈 장면으로 변하는 과정에는 그것을 보는 여성 관객에게 ‘공감’이라는 것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실생활에서도 연기해야 하지만 영화 속 연기를 하면서도 그 안에서 또 연기를 하고 있구나. 그야 말로 ‘연기 속의 연기’랄까. 감탄(?)스럽게도, 그리고 가엽게도 여자들은 ‘척’ 하기의 달인이다. 없는 지스팟을 공략당하면서 아무느낌 없어도 좋아하는 척 ..
왜 연기를 해야 하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아니, 사실 알고 있지만 얘기하기 껄끄러워 모르는 척, 또 그 ‘척’이라는 걸 한다고 해야 하나. 특히 성에서만큼 우리는 내숭을 넘어 경이로운 연기력을 펼치며 스스로를 희화화 시키기도 한다.
난 ‘바람난 가족’의 섹스씬들을 보면서 이 영화에만큼은 여성이 원하는 성의 모든 것이 해방되었다는 걸 느꼈다. 마치 판도라의 뚜껑이 열린 것처럼. (임상수 감독, 그런 면에서 좋아한다.) 바람난 가족의 영화 속 여인들, 마치 우리와는 먼 세계에 살고 있는 마냥 침대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들. 자신의 욕망에 따른 솔직한 몸의 움직임을 보고는 영화 속 그들이 마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는 역설에 혼자 웃음이 나왔다. 영화의 섹스씬은 너무도 정확(?)했다! 이후로 이와 비슷한 영화가 국내에서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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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사실 이 영화는 가족의 붕괴를 그리고 있다. 느슨하고 약한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의미도, 가치도 희미해져 버린 이름뿐인 가족의 얘기를 신랄할 정도로 솔직하게 하고 있다. 끈끈한 관계의 가족도 많겠지만 그렇지 못한, 그래서 영화에 공감할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남보다도 못한 형제자매도 있고 이미 경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공동체여서 어쩔 수 없이 지속해야 하는 부부의 관계 등 마음속으로는 이미 해체되어 버렸으나 가족이라고는 부르는 그런 관계 말이다. 이미 마음은 한참 멀어진 채로 서로 다른 생각과 꿈,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는 현대인을 영화는 다소 거리를 둔 시선으로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영화에서 호정(문소리 배역)이 영작(황정민 배역)에게 유난히도 많이 했던 네 인생이나 잘 살라고 했던 대사는 애정 없는 부부의 각자 인생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재밌게도 영화 속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저지르고 있는 외도가 가족 해체를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얘기했던 이동진 평론가의 평이 마음에 와 닿았다. 외도 자체가 아니라 결과물로서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온 가족이 피워대는 바람이 그리 불편하고 못마땅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콩가루 집안은 맞지만 어쩐지 그 모습이 불쌍하고 쓸쓸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애정 없고 무관심한 듯한 영화 속 이들은 사실은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고 있다.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삶 앞에 각자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나름의 방식으로 가치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존적 몸부림, 그 방식중 하나가 바람이어서 문제였지만.
여기서 호정은 처음부터 외도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의미를 찾으려 하던 유일한 인물이다. 가슴으로 낳았다고 말하던 입양한 아들을 애지중지하고 시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남아있는 남편의 가족을 묵묵히 챙기면서 희미해져가는 가족이라는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떠난 영혼을 붙들 수는 없었다. 영작은 곁에 있던 여자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고 공허하고 무력한 삶의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둬 버렸다. 영작의 이기적이고 무신경한 성격과 쿨한 척 찌질한 아이같은 면모를 황정민이 얼마나 잘 소화해 냈는지 모른다. 영화 후반쯤에 황정민의 연기 때문에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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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끌기 위해 그랬겠지만 바람난 가족의 포스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문소리의 노출에 집중해야 하는 영화는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이라는 측면에서 시대를 한참 앞서갔고 가족의 해체와 인간의 외로움, 실존적인 고통 등을 다룬 영화를 문소리의 노출컷 하나로 대변하기엔 너무하지 않은가. 바로 아래의 이 포스터,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