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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약을 꽂고 달린다.

by 이라IRA


전쟁이 터져도 주식 장은 열렸다.

몇 주 전부터 러시아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와는 너무도 먼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 저 쪽 중동에 걸쳐있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지도 모른다는 뉴스와 함께 안 그래도 올해 초부터 바닥 탐사를 하고 있는 주식시장에 우박을 퍼부으려는 징조가 포착되었다. 바위 같은 우박에 지금의 바닥이 뚫리고 새로운 바닥을 만들려는, 대규모의 재해가 한 차례 더 일어날 것만 같은 공포감은 외국인, 기관, 개미투자자 할 것 없이 갖고 있는 걸 다 던져버리고 도망가고자 하는 놀라운 결단력을 불렀다. 군중의 투매, 장중 열두시 반쯤이었나.. 좋게 빨간 불을 키며 달리던 단타 계좌가 일순간에 모두 파란 불로 바뀌는 순간. 대범하기들도 하지, 공도 아니고 돈을 그렇게 함부로 마구 던지나. 주식을 시작한지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나에게 칼 손절이란 우크라이나보다도 더 , 남아프리카만이나 동떨어진 얘기이다. 대범한 고수들이 떠나고 남은 장에는 나처럼 점점 선명해지는 파란 불을 이빨 떨며 지켜보고 있는 소심한 개미들뿐이다.



눈 뜨고 코 베어간다고 했었나. 주식 시장에 발을 담그고 있다 보면 이 말이 뭔지를 처절하게 실감하게 된다. 코가 하도 베여서 민둥민둥 해진지는 한참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 발을 담그고 있다. 아니, 온 몸을 아예 푹 담그고 있다.

주식은 마약과 같다. 열 번 손실을 봐도 한 번 수익 본 맛을 쉽게 잊을 수 없는 게 사람이다. 그 한 번에 마치 로또라도 맞은 기분에 휩싸이게 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어찌 보면 대단히 단순하고 어리석은 면이 있다. 주식시장을 포함한 모든 도박시장은 바로 이런 인간의 맹구같은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번다. 자본주의가 낳은 양날의 검과도 같은 주식시장, 주식은 섣부르게 덤비면 정말로 도박과 하나 다를 게 없다.

빠져 나오고 싶어도 어쩌겠어. 이미 마약에 취해있는데. 이런 표현은 끔찍하지만 온 몸 구석구석까지 마약이 퍼져 있어 이 주사 바늘을 뽑고 정상인으로 돌아오기란 이미 글러먹었다고 해야 하나 보다. 그래서 주식에 취한 사람은 도박으로 어떻게든 수익을 내면서 주식인생을 끌고 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엔 한 가지 비밀이 숨어있다. 비밀이라기보다 비결이라고 해야 하나. 이 도박판에도 말이다. 주식의 움직임을 깊이 파고들다 보면 이 바닥에도 세밀한 확률, 통계, 패턴과 가장 중요한 심리학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걸 로봇같이 쫓고 익히다 보면 파란 불이 줄어들고 어느 순간 계좌에 빨간 불이 들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로봇같이’ 이다. 감정을 배제한 로봇. 주식시장에 적응해 간다는 얘기는 나를 사람이 아닌 사이보그로 재정비 해 나가는 과정과 같다. 로봇의 경지에 오를 때에 비로소 주식 트레이딩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주식이 마약이 아닌 상태로 살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엄연한 사실은 이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주식으로 모든 개미들이 돈을 잃는 건 아니다. 그 중, 10%도 채 되지 않는 소수이지만, 이 대단한 소수의 수퍼 개미들은 다른 일 하나 하지 않고 주식 트레이딩만을 전업으로 삼고 살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거의 경제적 자유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아주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은 아직도 주식이 마약인 개미들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신적인 존재이다. 그 어느 교파의 교주보다도 더 강하고 위대한 존재.


그 어느 국가보다 자본주의를 맹신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노인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훗날 살아남으려면 극약처방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오게 된다. 나는 그 방편의 하나로 주식 투자를 택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로봇 사이보그, 즉 수퍼 개미가 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에 남기고 싶어졌다. 수퍼 개미는 희망사항일 뿐이지, 사실 깡통을 찰 수도 있다. 아니, 통계상으로 그럴 확률이 훨씬 더 높다.

깡통을 차면, 뭐, 그 다음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해야지 어쩌겠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말이다. (갑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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