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그랬냐는 듯 거의 모든 종목이 상승장을 타며 춤을 추고 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같이 투자하던 사람 중에는 그만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속출하기까지 했던 장이었는데. 마치 좀 전까지 눈보라가 휘몰아치다가 갑자기 타오르는 해가 똑 떠오른 느낌이다. 지옥 한 구석에 고통 받고 있다가 금새 천국으로 승천한 기분, 이건 연옥이라는 중간계도 거치지 않은 상승이다. 다른 사람보다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 나에게 좀 당해보라고 나를 주식의 세계로 떠민 것 같다. 신 혹은 악마의 농간으로 이상한 세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랄까. 널을 뛰며 변덕을 부리는 상대를 대할 때 어떤 기분인지 이젠 제대로 알겠다. 아무튼 재미있다.
희망적인 건 역대급 최악이라고 평가받았던 시장을 겪었던 동안 나도 모르게 내공이 쌓였다는 점이다. 상승장이 오니 계좌에 찍히는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인다. 그동안 공부하고 훈련해 왔던 기법들이 모든 자리에서 척척 들어맞고 수익이 좀 생기니 그 중 하나 잘못 들어가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종목도 어렵지 않게 손절할 수가 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손실인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손절할 수가 없거든. 갑자기 없던 입맛이 돈다.
하락장에서도 시장을 관찰하고 재료와 차트 공부를 매일 반복했다. (그럴 수 밖에, 리얼 돈이 걸려있는데..) 학교 다닐 때 이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했던 적이 있었던가? 흔히 하는 농담처럼 이 정도로 공부를 했다면 정말로 서울대 갔지 싶다.
누가 주식 수익을 불로소득이라고 하던가? 이런 얘길 하는 사람은 과연 주식투자나 해 보고 하는 얘기인지 궁금하다. 주식으로 수익을 내는 건 고도의 정신적 노동과 함께 심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철저한 멘탈 관리가 요구된다. 정신적 노동을 쏟아 붓는다고 해서 또 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대학생 때 과외, 식당과 카페 서빙 등의 각종 아르바이트를 적지 않게 해 봤고 사회에 나와서는 스트레스와 분노 게이지의 최대치를 요구하는 디자이너직도 해 봤지만 그 어떤 일 보다 가장 돈 벌기 어려운 일이 주식 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식이 불로소득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엄청난 훈련과 노동을 요구하는 돈벌이란 말이다.
여기에 보태 또 한 가지가 있다. 모든 학문과 기술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숱한 자기 개발서에서 증언하듯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매진하기만 한다면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훌쩍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주식시장은 다르다.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언제든 배신하고 뒤통수를 치는 게 이 바닥이라는 말씀. 그래서 마인드와 멘탈 관리가 필수이다. 어쩌면 이것이 수익에 필요한 여타 재료와 차트 분석, 기막힌 매수와 매도 타점 등과 같은 현란한 기술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조금만 시장을 안일하게 대하거나 혹은 욕심을 과도하게 부리는 순간 아무리 짬이 많은 고수라 해도 계좌는 순식간에 시퍼런 불로 점령당할 수 있다.
누가 주식으로 수익내는 게 놀고 먹으면서 편하게 돈 버는 불로소득이라고 했을까? 찾아가서 확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