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윤 Apr 06. 2022

친구는 거울

우정 따윈 개나 주지.

   

 한 때 털에 광택이 돌 정도 매끈하고 날렵한 몸으로 어떤 사냥도 성공해 내는 유능하고 잘 생긴 치타가 한 마리 있었다. 시기와 모함이 때때로 있었지만 그룹의 무리에게 대체로 호감을 사는 편이었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지 조금씩 병약해지기 시작했다. 시름시름 앓던 그는 윤기 있던 털이 푸석해지고  듬성듬성 빠져서 볼품없는 모습이 되어 갔다. 사냥을 나가고 초원에서 여유롭게 다른 무리들과 어울렸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기력하고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이 되어가는 그의 옆에 남은 동료와 친구는 과연 누가 있을까?  남기는커녕 그를 먹잇감 삼아 공격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인간의 세계? 초원에서 사는 야생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인생에 있어 깊은 수렁의 기간을 겪으면서 알게 된 사실.   

 

 친구라는 존재는 즐거움을 나누고 기쁨을 배로 불려줄 수는 있지만  슬픔과 절망을 함께 공유할 수는 없는 존재인 듯싶다. 마치 내가 매일 아침 들여다보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 그것이 친구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 내가 웃고 있을 때는 같이 웃지만 불행할 때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얼굴, 친구라는 존재는 그렇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에 별로 서운한 마음은 없다.

 그러나 가끔은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전적으로 내 편인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 또한 한구석에서 여전히 아이 같은 얼굴을 한 채로 앉아 있다. 어떤 순간에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누군가가, 내가 뭘 해도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드는 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 나의 상태가 좋지 않을수록, 우울할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진다. 부모 외에 그런 존재는 정말 찾기 힘든 걸까?     

 

 결혼을 한다면 남편이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그런 배우자를 만난 이는 정말 행운아다. 나는 배우자라는 존재도 친구와 동일한 기조로 보는 입장이다. ‘웬수가 안 되면 다행’이라고도 많이 하지 않나? (응?) 별로 긍정적이지 못한 이 생각에 한 친구는 이렇게 받아쳤다.     

 

 “그래도 내가 병원에 입원하면 수납이라도 해 줄 수 있잖아.”


 그 아이도 마음 한 구석에 나와 같은 불안이 있던 걸까. 여태껏 혼자서도 씩씩하고 재밌게 잘 살던 아이가 작년부터 선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평생 함께 할 짝을 찾고 싶다지만 일면식 없는 남자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자리는 상상만 해도 영 어색하다. 그러나 친구의 껄끄러운 맞선자리 에피소드는 듣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여 그녀가 언제 또 선을 보는지 매우 궁금해 졌다. 선 자리에는 각양각색의 이상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는데 그 얘길 하는 내내 친구는 연신 한숨을 쉰다. 나는 레스토랑 옆자리 사람들이 들릴 정도로 웃어댄다. 그렇게 웃어 제끼는 나는 내심 그녀가 계속 맞선에 실패하기를 바라고 있다. 베프가 결혼을 계기로 날 떠나버리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심정이랄까. 내 진심을 알아버린다면 그 친구의 맞선 에피소드 따윈 다시 들을 수 없을 거다. 그런데.. 역시나 어차피 거울같은 베프따윈 이제 시집가도 상관 없다. 쿨하게 널 보내주겠다, 요즘 이러고 있다.

 

 현재까지 나는, 무표정하고 재미없는 얼굴로 거울을 본다. 이제는 좀 웃으려고.

매거진의 이전글 비싼 나의 갱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