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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r 12. 2022

비싼 나의 갱년기

  나의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금새 다 떨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전적으로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 당시 나는 하루라도 빠르게 해야 할 정도로 수술이 급했고 별다른 정보도 없이 처음 암 선고를 내린 의사에게 덥석 수술을 맡겨 버렸다. 얼마나 바보 같았던지. 그건 마치, 진짜 의사와 사형 집행자인 가짜 의사 중 스스로 눈을 가린 상태에서 아무나 추첨하여 내 배를 가르라고 내어 준 거나 다름없었다. 좀 더 알아보고 신중하게 수술을 했어야 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혹시 자궁 쪽에 암이 생겼거나 암 판정을 받은 지인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몇 가지 조언을 담고 싶다.     

 

 일단 MRI나 PET-CT 상으로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면, 그러니까 아직 3기로 넘어가지 않은 2기로 추정된다면 자궁을 포함한 나팔관과 난소 모두를 제거하는 광범위한 개복수술은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얘기하고 싶다. 아니, 자궁만 없애든가 혹은 당신의 몸은 소중하니까 그냥 다 두라고. 개인적으로 수술 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절대 모든 장기를 다 들어내는 공격적이고 무자비한 수술은 하지 않겠다. 아주 나중에 겪어도 되는 후유증을 젊은 나이에 급작스럽게 겪게 되고 그만큼 빨리 늙어버리기 때문이다. 갱년기, 바로 이 무서운 년(?)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당신을 덮칠 것이다.     

 갱년기가 별거냐고? 단언컨대, 별것 중에서 최고로 지독한 별것이다. 갱년기로 접어든 어르신에게는 정말 잘 해 드려야 한다. 소중한 장기를 다 들어내어 버린 당신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겪을 것이다.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극심한 체온 변화도 물론 힘들겠지만, 당신은 그 밖에 상상을 초월하는 모든 노화과정을 총 망라하여 겪게 될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유 없이 머리가 조금씩 빠지더니 나중엔 매일 뭉텅이로 빠지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탈모는 이유 없는 게 아니었다. 갱년기 때문이었다. 뼈에서 갑자기 칼슘이 빠져나가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게 괴로웠고 20대 때 몇 백만 원 들여 했던 라식 수술이 무색해지게 시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노화, 노화, 노화현상이고 했다. 얼굴에는 ‘한관종’과 ‘피지 샘 증식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트러블이 나타났는데 이 역시 ‘노화현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도 노화현상이라는 말을 들었더니 내가 마치 70대 이상의 고령자가 되어버린 기분이다. 아, 또 하나,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었던 내가 불면증이라는 신기한 증상이 생겼는데 이게 사람을 아주 죽이더라. 역시 갱년기의 ‘노화현상’이라고 했다. 이것뿐이야? 별로 먹지도 않는데 몸에 놀랍게 살이 붙는다. 오미크론에 확진된 이후로 근 한 달 간 수영을 못했더니 금방 마시멜로 괴물처럼 살덩이가 불어나는데 (고스터버스터즈를 봤던 옛 세대들은 마시멜로 괴물이 뭔지 알 것이다.) 매일 슬금슬금 올라가는 체중계의 숫자 때문에 스트레스로 탈모가 더 심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웬수같은 ‘노화현상’을 지연시키는 데에 들이는 비용이다. 노화를 막는 게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여행이라도 다니거나, 나가 놀면서 돈을 다 날린다면야 억울하지 않기라도 하지, 집에서 숨만 쉬는데 고급 레포츠 비용이 매월 날아가고 있다. 어쩔 수 없지. 빨리 할머니가 되느니, 갱년기에게 삥 뜯기는 수 밖에.     

  

 공격적으로 수술을 하는 이유도 물론 있다. 의사들도 나름 고심하고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영상 속 암은 자궁 안에만 차 있었지만 혹시 다른 곳에 극소량이라도 있을지도 모르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혹은 차후 생길지 모를 재발 방지를 위해서 라고는 한다. 한 마디로 예방 차 다 없애버린 거지만 사람 몸속에 있는 장기는 아무 이유 없이 그 자리에 붙어 있는 게 결코 아니다. 나는 절대 함부로 떼어내서는 안 된다는 주의이고 최근 젊은 의사들도 최대한 모든 장기를 보존하는 수술을 택하는 경향이라고 들었다.

 나는 재발된다면 그건 차라리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고 말겠다. 수술하고 나서도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인생을 망치다 시피 하는 건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암이 재발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면 절대 뱃속에 있는 장기들을 칼로 난도질 하진 않을 것이다.      

 아, 난소와 나팔관 뿐이던가. 림프절을 스물 여섯 개나 떼어버린 부작용이 사실 더 큰데..  이 얘기까지 다시 늘어놓는다면 모니터를 쳐다보다가 울고 말 것이다. 그냥 나가 놀고 싶다. 아님 한 숨 자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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