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깊이는 성별에 따라 다르답니다.
그래서 우정이 그렇게 힘든 거였어?
상대적으로 주위 상황에 대해 약간은 더 무신경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상대방에 대해 대채로 무심한 성향, 그래서 서로에게 덜 기대하고 깊은 교감 따위는 바라지 않는 이들의 특성이 인간사이의 우정을 오히려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는 이 역설적인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은 남성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 점에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진화 생물학에 기반을 두고 인간의 뇌를 탐구하면서 쓰게 된 책 ‘프렌즈’. 동물의 집단사회를 주로 연구하던 로빈 던바라는 영국 생물학자가 인간에게로 눈을 돌린 후 첫 번째로 쓰게 된 뇌 과학에 대한 책이다. 인간사회에 관하여 쓴 신간 치고는 처음에 나는 이 책이 너무 편견에 치우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다분히 남성관점에서 펼쳐지는, 남성 중심적인 진화심리학을 기반으로 성별의 행동을 분석하고 특성을 규정지으려는 방식은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공감이 가는 부분도 더러는 있어서 책을 읽은 지 한참 지난 이 시점에 새삼 이 점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 싶어졌다.
쉽게 설명하자면 남자들 사이의 우정이 여자들에 비해 그 깊이가 얕고 서로 덜 친밀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책은 그들의 우정 쌓기의 방식이 오랜 대화를 통해 교감을 나누고 마음을 쌓아가는 여자들의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얘기한다. 남자들은 대화 몇 마디 없이도 함께 무언가를 하는 방식 (예를 들면 축구, 농구와 같은 운동)을 통해 팀웍을 만들고 같은 그룹이라는 유대감으로 우정을 쌓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설명, 그렇게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기대치가 주로 대화와 교감을 통해 우정을 쌓은 여성들에 비해 낮다는 논리이다. 기대치가 낮으니 실망할 일도 적다는 얘기. 때문에 서로의 우정에 금이 갈 일도 여자들보다는 적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여자들의 우정은 깊이가 깊고 서로에 대한 기대치도 그만큼 높아 서로에게 실망하는 일이 벌어졌을 때 더 쉽게 깨질 가능성이 있고 그 우정은 돌이킬 수도 없게 된다는 설명, 이 부분이 너무 흥미로웠다.
자매처럼 세상 둘도 없이 친밀하게 지내다가도 한 번 싸우고 나면 그대로 끝인 우리, 사소한 일들로 갈등을 겪고 공들여 쌓은 우정을 한 순간에 쉽게도 날려먹는 여자들의 회의적인 우정연대기,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가? (나만 그런 거야? ) 그런 점 때문에 남자들 사이에 있을 때가 오히려 마음이 편했던 나는 이런 점이 여자로 살면서 줄곧 마음속에 안고 있던 딜레마 중 하나였다. 자칭 페미니스트인 내가 남자들과 같이 있을 때 오히려 편하다니, 이 불가사의하고도 풀 수 없었던 딜레마를 ‘프렌즈’라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을 통해 드디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또 다른 아이러니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긴다. (그래서 오래 살고 싶다.)
모든 사람이 획일적으로 이렇게 구분되는 건 또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이 책을 읽으니까 난 오히려 남성적인 우정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다보다는 차라리 무언가를 같이 할 때가 더 재미있고 신나기 때문이다. (그게 축구는 아니더라도) 친구들끼리 커피 한잔 두고 벌이는 시시콜콜 스몰토크가 난 오히려 귀찮고 지루하다. 그래서 남자들 사이에 있는 게 더 편했던 거다. (이럴 수가, 잘못 태어남.) 이런 내 방식이 동성인 여자 친구들에게는 무심하게 비쳐졌던 것일까? 나한테 서운하고 빈정 상하고 등 돌리는 년들이 왜 그렇게 많았던 거냐고. 그건 내가 우정 쌓기 방식에서 그들과는 다른 노선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자들의 방식을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하고 있어서였기 때문이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