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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포갤러리 Apr 18. 2023

아홉







그림을 그릴 때

그리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그림에 상당한 의미를 갖게 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마쳐야지...'하고

만땅 충전된 노트북을 집에 들고 왔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미 입력된 4 chapters의 글을 지웠습니다.

술 기운 때문이 아니라 이젠

애 쓰면서 흔적을 남기는 것은 제 삶의 목적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지우고...

내가 오해하고 있는 삶의 충돌들을

잘 지우는 그림들처럼.

그렇게

내게만은 괜찮았던 그림으로

마치고 싶습니다.

포기라기보다는

양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은 비가 오구요...

새들은 더욱 시끄러워져

적막한 심정을 들뜨게 하기도 합니다.

.


.


.


대평이는 한 병에 이어 두 병째 술을 마시고

엽동이는 열심히 라면에 밥을 말아 먹고

가르마도 없는 가르마는

격렬하게 막창을 꼬들꼬들 소리내며 씹어 먹고

나는

그림을 그렸다가 지우고 그렸다가 지우며

큭큭 웃어대고 있습니다...

새벽의 작업이 외롭지 않게 해주는,

먹는다고 시끄러운

먹방은 고맙기까지 합니다.

사는 것은 정말 대수롭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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