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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포갤러리 Nov 19. 2023







길지 않은 인생도 모자라서 3분의 1은 잠을 자야

온전하며 가는 순간을 짐작하는 이는 한 사람도 없다.

뇌세포가 하나씩 잠들어가서

이십년만에 기도에 호흡기를 꽂는 순서에

죽음을 맞이한 지인과

밭에서 일하다 벌에 쏘여 그대로 가신 동네 할머니나

아파트 대기서 아이가 던진 돌에 맞아 절명한

사람중 우리는 어떤 경우를 할까?

물론 운이 좋아 적절하게 아프다가 지막을 감지하고 가는 행운의 사람도 있겠지만.


사십 전의 나는 100%전자를.

60대 중반 지금의 나는 90% 후자를 원한다.

아니 희망한다고 말해야겠지...

왜 10%의 차이가 있느냐고?

성질이 더러운 나는 그것이

차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미련도 아니고

두려움은 더더욱 아니지만

어쩌면 나이탓으로 인간적인 두터움이

생겨서 뒤를 돌아보게 되는 연민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좋지 않은 시력으로

눈물이 난다...슬프지 않은데.

글 따위는 안쓰는게 좋을 거라고 의사는

경고했지만.

사랑의 손식을 비웃을 때 빼고는

사랑은 인생 최대의 난적이다.


요즘 어린 손녀들을 보면서

어릴 때는 어릴 때의 사랑이.

자랄 때는 외롭지 않도록 섬세한 사랑이.

커서는 후회하지 않도록 과감한 사랑이.

늙어서는 그리워서 품고 갈 수 있는 사랑이 있었어야 온전한 마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누구라서

온전히 모든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느님은 인간을 온전히 사랑한다 하시지만

시기가 너무 넓어 우리에게 감지되지 않는 것을

바보들이라고 나무라실 일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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