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한없이 약해질 때.
그 운명에 순응해야 하는 뒷배경을 무조건 감지할 때.
아주 중요한 선택마저 초등학교 운동장에 날리는 운동회 만국기 깃발처럼
그 어떤 의미가 비치지 않을 때...
사람이라면
그렇게 삶이 퇴적해 보여 혼돈될 때가 반드시 온다.
난 오늘 무척 바쁘려고 결심했었다.
자르거나 말거나 보는 사람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는
포니테일 머리를 잘라야 하나, 관둘까... 를 종일 고민도 했었다.
그동안 마인드 컨트롤을 잘해서
현실과 이상을
이쪽저쪽 잘 견주어 살아왔건만.
그래서 그것은
전반부였는지 후반부였는지... 조차 이젠 감지가 안된다.
사람은 역시 삶과 눈이 잘 맞아야 하는 것 같다.
토스토 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나 '백야'에서
사랑의 팔자를 너무 관심 깊게 읽었기 때문일까?
오늘
머리칼은 자르되
애초의 목표와는 달리 찜질방은 가지 않았다.
마음먹은 일을 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아서
어쩌면 편한 일상사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할 수 없어서 그렇게 생각을 쪼개어 갈지라도
모쪼록
꿈에서 깨어 움직여도 다시 꿈으로 이어지던
아주 어릴 때의 몽환적 꿈들이 다시 생성되길
나는 요즈음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