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성격에 안 맞는, 지나치게 긴 이야기를 써 볼까 해.
스무 살 때 보라색 투피스에 얼핏 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 헤어스타일이긴 한데
내 멋대로의 촌스런 헤어스타일의 나와 북한에서 남파된 북괴 공작원처럼 깡마른 당신이 만났었지.
만남이 이어지면서
"너희 조상은 뭘 하셨니?" 물으면
"대대로 꽈배기 장사를 했어. 그래서 내 성질이 이래."라든지
"어머니는 어디 홍씨지?" 물으면
"감홍씨다. 왜?" 말도 안 되는 답을 핑핑 날리곤 했어.
당신이 친구에게 날 소개할 때 "성냥개비 한 개를 날리면 열개가 날라 오는 애다..."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지.
한 번은 둘이 만났는데 내가 통 말을 안 하니 당신이 꾸벅꾸벅 조는 거야.
그래서 난 잘 자...라는 눈인사만 하고 그대로 나와 내 볼 일을 보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골목에서 황급히 두리번거리며 날 찾고 있는 당신 모습이 보이더군.
난 더 꼭꼭 숨어 버려 인간답지 못한 숨바꼭질을 했어.
이런저런 일이 계속되고
나중엔 당신이 오기가 생겨 이 못된 인간을 꼭 갋아 보자.. 했다지.
그런 내가 오만의 벌인지 급기야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어.
요즘에야 그건 병도 아니지만 그땐 의료보험도 없는 시절이니
눈을 뜨면 이틀이 지나 있고, 또 눈을 뜨면 나흘이 지나 있고.
머리를 얼마나 못 감았는지 떡져 있고 쉰 내가 나고 얼굴색은 하얗다 못해 백지였는데
그런 날 찾아 와 머리를 쓰다듬고 물을 데워 먹여 주고 옷을 걸 수 있도록 벽에 못도 박아 주고 했잖아.
생각나?
그 와중에 난 이런 생각을 했어.
내가 좀 나으면 꼭 너를 만나 사과하고 완전히 나으면 네 원대로 결혼해야지...라고.
그런
몇 달 후 겨우 나았는데 얼마나 살이 빠졌는지 걸음걸이가 마치 달 표면 걷듯 붕붕 날더군.
직장 사람들은 도대체 저 처녀가 살겠나? 죽겠나? 했다고 해.
그런 날 변치 않고 사랑했으니 말 그대로 콩깍지도 보통 콩깍지가 아니지.
좌우간 우린 6년간 수 십 번도 더 헤어졌다 결혼이란 것을 했어.
그리고 남들이 하는 것처럼 지글 재글 30년 넘게 살아 황혼을 바라 보고 있다가
우리는 신의 장난처럼만 생각되는 이별을 했어.
5개월 넘는 투병이 있었고 끝에는 말도 할 수 없어 손짓이나 내 통역으로 의사를 전달할 때였는데
어느 황혼 녁에 사람들 앞에서 당신이 내 귀에 대고 얘기했어.
"선주는."
"선주는."
나는 남이 있을 땐 당신 얘기를 소리 내어 무작정 옮겼지.
"세상에서."
"세상에서."
"제일"
"제일"
"착한 여자다."
"..... 착한 여자다."
아이고, 고맙네. 알아 주시니..라고 얼른 무참한 분위기를 넘겼지만.
"사랑해."
"...." 그 다음 말에 화장실로 뛰어 가서 울고 말았어.
세상 모든 것에
상처받아 살아 남으려고 남 생각 못하고 악만 남은 어린 여자가
당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착한 여자로 불려지기까지
얼마나 당신이 좋은 사람이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지.
삶이란 제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더라도 참 만만치가 않다.
그냥 당신은 항상 여기 있고
나도 항상 당신 곁에 있을 뿐이야.
내게
우리에게
이제 더 이상의 이별은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