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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포갤러리








SDC11675.JPG Watercolor on Paper/Life







2000년 4월, 어느 봄날에 사상 유래 없는 한국 수채화협회 공모전이 열렸어.

작품을 내고 실기를 병행하는...

그런 공모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어릴 때부터 그림 표현의 매력에 빠져 땅바닥이나 벽이나 종이나 가리지 않고

작대기, 손가락, 연필로 무작정 그려대던 나는

조금 늦었다 생각되는 서른다섯 나이에야 물감을 손에 묻히기 시작했어.

처음부터 결심이 사과 한 알도 못 그리는 비구상 작가는 되기 싫어서

원하는 추상 작업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뭔가 기초의 도달이 필요하다 생각했지.





장미.jpg Watercolor on Paper/Life






"떨어질 것은 뻔한데 실기 보러 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주위의 말에

난 머리 뚜껑이 열린 채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와 당신 앞에서 펑펑 울기 시작했잖아.

그때 당신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어.

"너처럼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안 가면 누가 가겠어?

한 해 두 해 할 것도 아니고 십 년은 도전한다 각오해야지."하며

비행기 표를 예약해 주었지.

운도 없게 내가 뽑은 실기 자리는

어느 초등학교 체육관 땡볕이 쨍쨍 내리쬐는 한구석에다가

그리라는 정물은 생전 연습하지도 않은 갈대에 귤 몇 개가 굴러 다니고 있었지만

장장 네 시간에 걸친 사투였어.

비 오는 새벽 길에 두 짐 되는 화구를 이고 지고 돌아와

까무러치듯 잠자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지.

대상에 선정되었다는...



그 대회의 상은

내 의식이 한꺼번에 이십 배는 고무되는 일이었어.

그 뒤로 혼자만의 비구상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일과 작업과 가정의 일이 오랜 세월 병행되어

올해 열일곱 번째 개인전을 마쳤지.

그동안 너무 힘껏 당신에게 기대서

지금 혼자만의 숙성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밥 달라고 울다가 밥을 주면

눈물 고인 눈으로 밥을 퍼먹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처럼

아침에 작업을 시작할 때면

캔버스를 마주한 나의 눈이 항상 젖어 있어...

내게 당신은 천군만마보다

더한 마력의 힘이었던 것 같아.

그래, 그렇지.

천군만마...

당신은 떠났어도

당신의 습관 같은 격려는

지금도 내 안에서 항상 계속되고 있지.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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