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by 사포갤러리








20151028_100920[1].jpg Sappho-Meyaphor/Mixed Media







며칠 전 별세하신

천 경자화백이 서울시립미술관에 6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하면서

“내 그림이 흩어지지 않고 일반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길 바란다”는 말을 남겼어.




"영원히 남길 바란다..."

화가라면 누구나 다 마지막까지 바라는 소망이지.

난 종종 이웃에 아는 화가의 죽음을 겪었어.

웬만큼 유명해서 그 자식이 그림에 프리미엄을 얹어 팔아

한껏 아버지의 위상을 높여주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그릴 수밖에 없는 눈과 손을 가지고 태어나

끝도 없는 불확실과 가난과 무명과의 번민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참아내거나 관조하다가

생명이 다하면 그로써 끝인 삶...

그게 보통스런 화가가 걷는 길이야.

삶은 늘 모호한 안개를 헤매다 안개가 걷히고

산등성이의 흰구름을 치켜 볼 때쯤이면

자신의 뜻을 접고 프로필을 정리해야 할 시기가 다가 오지.




멍청한 나!

당신이 옆을 지킬 땐 누구나 다 가야 할 끝이건만 나의 끝은 상상도 안 했어.

더 멍청한 나!

이젠 마구마구 닥치는 대로 나의 끝을 생각하게 돼.


어느 날

눈에 조롱조롱 눈물을 달고

작업실의 그림들을 손장난 보듯 바라 보며

'난 어떤 말을 남길까?'생각해 봤지.

내 그림이 영원히 남아 산 사람, 그 뒤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인다면 얼마나 좋겠어?

아니, 영원히 남길 바란다... 는 말을 할 처지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

자식에게만 영원히 남기자니

그 아이는 엄청난 엄마의 예술 생산량으로 이사도 못 갈 형편이 되겠지...

열심히 분주하던 작업을 접고

창문 밖을 내다보니

2년간 할아버지 중풍 뒤바라지에 그리 진저리를 치시던 옆집 할머니.

며칠 전 할아버지를 저 세상에 보내고 신나게 가을걷이를 하신다.




어쩌면 저 안개가

삶의 근원일 수도 있겠지...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의 일을 알고 있었다면, 아니 짐작이나 했다면

예전의 그 일들이, 행복하게 불행하게

순리대로 일어날 수는 없었겠지.




다시

다시...

무심코

작업대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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