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어가는 것뿐이야!

소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by 아트필러

혼란한 시대에 사명감을 짊어지고 쓰인 청소년 문고답게 책은 꽤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어렸을 때 무의식 중에 필요한 지혜를 모두 배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만큼 사소한 어린 시절의 일화를 들여다보고 싶게 만든다. 경험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타인에게는 잘 와닿지 않으리라고 생각해 왔는데 오히려 개인적인 이야기라 오만한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애니메이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감상을 엮어보았다.



이상한 경험, 용감한 친구, 뉴턴의 사과와 분유, 가난한 친구


그러다 어른이 되면서 지동설이라는 사고방식을 갖추게 돼. 세상의 넓이를 알아 가면서 그 안에 있는 수많은 사물과 사람의 존재를 이해하게 되는 거야.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아. 요즘은 자기 이익에 눈이 멀어서 세상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구 반대편에서는 전쟁을 하는데, 당장 내가 산 주식의 주가가 오르면 기뻐해. 돈을 번 사람들의 말을 잠언처럼 따르고, 그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진 지도 모른 채 무작정 찬양해. 그건 결국 자기에게 돌아올 거야. 세상은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도 언젠간 모든 걸 잃고, 무관심 속에 방치될지도 몰라. 겁을 주는 게 아냐. 지금 당장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해 봐야 해.


너도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 착한 일을 하고 나면 보답받지 못하더라도 기분이 좋을 거야.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감정으로 친절을 베풀고, 그것을 기쁨으로 삼는 것처럼 아름다운 관계는 이 세상에 없단다.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사람다운 인간관계라고 믿는단다.

왜가리는 왜 돌아와 마히토를 도와줬을까. 그건 마히토가 자신이 배신할 걸 알면서도 그 구멍을 묵묵히 매워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전까지 왜가리가 살아남기 위해 배운 법칙은 먼저 배신하거나 꾀를 부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히토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약점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끝까지 괴롭히지도, 몇 번을 당하고도 자신이 배신할 게 뻔히 보이는데도 도와준다. 그러니까 굳건한 신뢰라는 건 어쩌면 상대가 나를 속일지라도 바보처럼 우둔하게 계속 믿어줄 때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코페르, 방금 외삼촌이 한 말, 가슴에 깊이 새겨 두기 바란다. 만일 풍요로운 네 환경을 조금이라도 자랑하고 싶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우쭐거리고 싶어 진다면 너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거야. 사람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딱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 거란다.

우라가와와 친구가 된 계기를 담은 초반부의 에피소드. 마히토가 책을 읽으며 본인의 생활, 지위 그리고 친구에 대해 생각했을 대목이 아닐까. 전쟁 중이고 어머니를 잃었지만 여전히 마히토는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 자신과는 다른 아이들의 생활에 대해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너에게 반드시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실제로 노력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고생한 덕분에 편히 살아가고 있는 네가 언제 어디에서나 늘 남일 수밖에 없다는 건 네가 느꼈던 감정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이해되지 않겠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다.

남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감당해야 할 고통이 너무 많아지려나.)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내가 될 수도 있었던 또 다른 나의 버전이야. 우린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이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분명히 달라.



나폴레옹과 네 친구, 눈 내리는 날의 사건, 돌층계의 추억, 관계 개선


사람이 다른 사람과 조화롭게 살지 못할 때 아파하는 까닭은 사람이 본래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태어났기에 증오하고 싸우며 지내는 것을 불행으로 느끼고 괴로워하겠지.

그렇다면 이렇게 설계된 우리들이 정작 실제로 살아갈 때는 서로를 고통스럽게 하는 이유가 뭘까? 세계와 사람은 왜 반대로 설계되어 있을까? 그 점에서 부조리가 탄생하는 거 아닐까?


코페르는 그때 한 행동을 생각하면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자신이 그토록 겁쟁이라고는, 그토록 비겁한 인간이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코페르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사람은 한 번 행동하고 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래서 정말 무섭다고 생각했다. 내가 한 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내가 알고 있고, 내가 잊었다고 해도 내가 저지른 일인 만큼 그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내가 그때 그런 인간이었다는 것을 지워 버릴 방법이 없다.

마히토가 눈물을 흘렸던 책의 중간 부분은 어머니가 앓아누운 코페르에게 이야기해 주는 내용이었을 것 같다. 코페르처럼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 마음이 불편했던 마히토가 ‘엄마’에게 듣고 싶었던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히토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한 일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 나츠코가 자신 때문에 앓아누웠다는 미안함 등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왜가리를 쫒는데 몰두하며 그 마음을 외면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알 수 없이 모호한 자신의 마음을 명확하게 표현해 주는 구절을 읽으며 조금은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이런 일과 감정을 겪는 건 나만이 아니고 인간의 보편적이고 평범한 일이라는 사실은 경험을 제대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엄마는 돌층계에 얽힌 일을 기억하기 싫은 일로 여기지는 않아. 그야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저렇게 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는 했지. 또 그때 이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도 없는 건 아니야. 손해나 이득을 따져서 그렇게 판단하는 건 아니란다. 마음속에 있는 따뜻한 감정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면서 아, 그렇게 하길 정말 잘했다, 하고 만족하는 일들이 몇 번은 있었다는 뜻이야. 생각해 보면 그때 돌층계에서 그런 일을 겪었기에 그 같은 소중한 경험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엄마는 코페르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코페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어떻게 소중히 간직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마히토에게 필요한 말이었다. 하지만 어떤 어른도 마히토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화가 잔뜩 난 아버지와 걱정하며 본인도 앓아누운 나츠코는 마히토의 죄책감을 키울 뿐이다. 그토록 듣고 싶었을 ‘괜찮다’는 말을 엄마가 남긴 책 속의 엄마가 해주었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따듯하고 다정한 포옹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또 코페르의 엄마가 이야기하는 돌층계의 추억에서 애니메이션의 핵심 소재이자 배경이 되는 ‘돌’이 나오지 않았을까 예상해 보았다. 자신의 분노, 슬픔, 원망을 ‘돌로 자해’하는 것으로 표출했던 마히토에게는 ‘돌탑에서의 모험’이 ‘돌층계 사건’처럼 앞으로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경험이 된 것이다.


…한 인간이 두렵고 괴로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끝내는 이겨 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해낸 것처럼 감격스러워. 자기 발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에 뛰어들어 마침내 자신의 뜻을 이뤄내는 기쁨이야말로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큰 위대함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고통이 클수록 고통을 이겨 냈다는 기쁨도 커질 거야. 그래서 죽음도 두렵지 않은 거겠지. 그런 게 바로 영웅 정신이야. 난 늘 그렇게 생각해. 영웅 정신으로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빈둥빈둥 사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져도 이런 정신으로 싸웠다면 그건 진 게 아니야. 이겼더라도 이런 정신이 없었다면 그건 진짜로 이긴 게 아니야.

영화에서 마히토는 책의 중간까지 읽으며 눈물을 흘리다 나츠코를 구하기 위해 뛰쳐나간다. 처음으로 아이다운 연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부터 마히토가 대체 어떤 부분을 읽고 있었던 건지 궁금했다. 먼저 코페르(준이치)가 겪는 핵심 사건에서 초반부의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마히토가 나츠코를 찾으러 돌탑으로 떠나는 용기와 힘겨운 시련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 나름대로 또 어른은 어른대로 여러 가지 슬픈 일과 괴로운 일, 아픈 일을 겪으며 살아간단다. 슬픔과 아픔이 즐거울 수는 없어. 하지만 사람은 슬픔과 아픔을 겪기 때문에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된다고 생각해.

만약 마히토가 모험에서 돌아와 책을 다 읽었다면, ‘외삼촌의 노트’에서 자신이 아주 훌륭한 모험을 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슬픔, 비참함, 고통, 실수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걸 제대로 마주하는 법도 배웠으니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면서도 떳떳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선화와 간다라 불상, 봄날 아침


… 갑자기 방이 환해졌다. 코페르는 고개를 들었다. 창문 가득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해가 안개를 뚫고 새햐얀 빛을 땅으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핵심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나서 후반부는 숨을 고르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여전히 미완의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맺는다. 아직 비어있는 노트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여기서 급히 마무리된 것처럼 느껴지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앞으로 마히토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빈칸으로 비워두는 느낌. 집을 떠나며 짐을 챙기는 마히토에게는 이제 새로운 빈 노트가 펼쳐진 것과 마찬가지다. 언젠가 그 돌탑의 모험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세차게 부는 바람과 잼이 잔뜩 발린 빵과 포옹의 온기는 몸에 분명히 남았기에 완전히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간 그곳에서 마음껏 화를 내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고 모험을 함께할 왜가리와 히미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분명 아마 좋은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마히토는 충분히 존재만으로도 사랑받을만한 아이니까. 큰할아버지가 후계자로 인정할 만큼, 히미가 결말을 알면서도 다시 선택할 만큼, 왜가리가 친구라는 말에 감동받을 만큼. 마히토의 손에 남은 그 세계의 돌과 인형이 그 희망을 이루어주기를. 인생에서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하나의 선택지에 대한 결말만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선택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어디서 끝내느냐에 따라 새드엔딩도 해피엔딩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생의 엔딩은 그저 끝났다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아직 마히토의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 부모, 용기 등의 굵직한 주제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이라든지 사소한 계기로 확장되는 세계에서의 모험으로 성장하는 주인공 등 책 전체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예술관과도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추천하는 책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청소년 문고를 아주 여러 번 읽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특히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책의 특정한 이미지나 주제에 영향을 받았다기보다 전반적인 이야기와 자신의 인생에 스며들어있는 책이기에 오히려 작품 속에 작은 소품처럼 그대로 등장시킨 것이 탁월하고 천재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선생님은 어린 청소년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들만은 이 시대의 나쁜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이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낸 청소년이야말로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나갈 소중한 자원이며, 청소년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으므로 그들에게 편협한 국수주의와 반동사상을 뛰어넘는 자유롭고도 풍요로운 문화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류는 진보한다는 신념을 지켜 내기 위해서는 청소년을 교육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파시즘이 미친 듯이 날뛰며 세상을 위협할 때도 선생님은 인본주의 정신을 지켜 내고 싶어 했고, 그 희망을 다음 세대에 걸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영웅으로 떠받들며 군국주의 내용으로 가득 찬 청소년 문고가 활개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야마모토 선생님 같은 분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책과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지금의 시대에 비추어봤을 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묻고 나름의 답을 해주고 있는가?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어떤 것을 정론으로 말하기보다 세계의 풍부한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과 불신만 가득하고, 희망을 가질만한 이야기, 생각을 확장할 수 있는 관점을 전해주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요즘 애들’이라는 지독하게 듣기 싫었던 말을 똑같이 내뱉으며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패배감만을 느끼게 된다. 어른이라면 어른답게 아이가 아이답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사에서 풀지 못한 여러 철학적, 사회적 문제에 대해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한다. 때로는 미성숙하고 이기적인 모습도 너그럽게 받아주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 윗세대의 책임감이 없다면, 어른들은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이전의 시도를 담은 오답 노트도 없이 떠넘기는 것이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해봤는데 다 소용없더라’, ‘나도 젊었을 때 다 해본 거다.’, ‘다 어린 시절 치기 어린 짓이다’라는 말들로 의지와 용기를 짓밟아 영원히 풀 수 없는 문제로 낙인찍는 것이다. 빈부격차, 전쟁, 환경오염은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없고, 그렇기에 그 모든 노력이 무가치하다는 무자비한 논리로 젊은 세대를 비웃는다. 그렇게 꺾여버린 마음은 더 무자비하게 다음 세대에게 무기력과 열등감을 심어주게 되어버린다. 이것은 진정한 비극이다.


시대상과 더불어 이 책이 청소년 문고로 베스트셀러인 이유는 모두가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질문과 마음들에 대해 조금이나마 잘 헤아려주기 때문이다. 그 모든 과정을 어찌저찌 겪어내고 무사히 어떻게든 어른이 된 어른은 이제 그 시절은 까마득할 뿐이고 아이에게 세상일이 원래 다 그렇다는 말로 넘어가 버린다. 작가는 한때 자신이기도 했던 그 아이를 외면하지 않고 그 시절의 마음을 헤아리며 다정히 묘사해 준다. 그리고 외삼촌의 말을 빌려 불친절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부단히 애쓰는 아이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성실히 질문에 답해준다. 자신이 배운 정답이 아닌, 스스로의 정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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