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어떻게든 위로받으면 되는 거지

영화 <고스트 캣, 앙주>

by 아트필러

카린이 못된 아이라서 좋았다.

끝까지 사랑할 수 없는 구석이 있는 그런 인물.

그래서 내 맘에 쏙 드는 것보다 더 좋다.

누군가의 싫은 점은 사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이거나 내가 부러워하는 모습 중 하나니까.


남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내지르거나,

영악하게 원하는 걸 교묘하게 얻고 고마워할 줄 모르는 모습이 처음에는 거슬렸다.

삐뚤어졌다, 성격이 꼬였다. 등등


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5학년일 뿐인 아이가 그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엄마, 빚에 쫓겨 도망 다니는 아빠, 아무도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 집, 몸과 마음을 헤아려주고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 그런 삶을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다 큰 어른도 견디기 쉽지 않은 상황인데 그걸 어린아이 혼자서 버티려면, 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시를 돋울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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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이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건, 아무도 카린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들어보지 못한 말을 진심으로 하기는 어려우니까. 카린이 배운 말과 행동과 모든 건 카린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같았을 것이다. 냉소적이고 차갑고, 비정하고 무참한 표정과 행동. 그러니 그런 반응에 계속 찔리면서 아파할 수는 없으니 먼저 날을 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정한 말과 마음은 필요 없는 것, 거추장스러운 것, 가식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계속 좌절되면 신포도 취급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마음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아서 누군가는 한 번의 좌절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게다가 어린아이이니 혼자 그 상처를 마주했을 때 움,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아마 카린은 앙주에게 돌아가겠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다.


아이의 가장 사랑스러우면서도 안타까운 특징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에게 상처 준 어른들을 용서한다는 것이다. 아마 카린은 자신을 버린 엄마와 아빠를 수없이 용서했을 것이다. 엄마와 잠깐 재회하고 아빠도 데리러 돌아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린이 혼자라고 느낀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안타까운 사실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한다. 게다가 반대로 아이들이 주는 상처를 쉽게 용서하지 못하고 오히려 훈계하려고만 든다. 카린이 아빠의 데리러 오겠다는 말을 믿지 못한 것은 그간 아빠가 수없이 지키지 않은 약속들의 결과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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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도 처음에 그랬듯이 어른들은 아이가 삐뚤어졌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으로 낙관하기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착하고 성실한’ 어린이라면 계속 아빠를 믿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괜히 나서서 여러 사람 속 썩이게 만들다니 괘씸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생각보다 냉정하고 더 지독하다.


상황을 바꿔보자. 애인이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데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약속된 날짜가 다가오는데 전화도 받지 않는다. 대체 누가 자신을 계속 속이고 상처받게 내버려 두는 사람을 믿고 기다리고 싶겠는가. 어른도 할 수 없다고 여기는 일을 어떻게 아이에게 요구할 수 있는가.


버려졌는지의 여부는 버린 사람의 입장이 아니라 버려진 사람의 입장에서 정의되어야 한다. “딱히...”라는 그 한 마디에 담긴 토라짐, 애정, 기대, 실망을 어째서 인간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걸까. 자신도 그런 말을 내뱉은 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37살 먹은 어른보다 37살 먹은 고양이 요괴가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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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주는 카린이 발칙하고 때로는 나쁜 짓을 했을 때 끼어들어 혼을 낸다거나 화를 내는 일 없이 그저 바라보다가 “카린은 거짓말쟁이”라고만 말한다. 과한 친절도 무관심도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 카린이 원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자신이 아르바이트비를 날렸다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말을 해주는 존재다. “내가 있잖아, 나는 고양이 요괴라서 안 죽어.” 앙주는 때로는 무심하게, 다정하게, 묵묵하게, 퉁명스럽게 그러나 언제나 ‘곁에’ 있었다. 나도 이별 따위 걱정하지 않고 산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앙주의 복슬복슬한 품에 푹 안겨보고 싶다.


나 좀 데리고 떠나 줄래?
지금?
응 지금.
지금은 좀... 공부가 중요하잖아.
그래 그렇지. 열심히 하렴.


초등학교 5학년 커플의 대화.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대화에 너무 어른의 연애 같은 바이브가 섞여 있어서 귀여우면서도 씁쓸했다. 핸드폰을 보면서 떠난 카린을 잡지 않는 그 남자애는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다. 같이 사랑의 도피를 떠나자고 말하던 시절은 이미 자신과는 다른 과거가 되어버린 것이다. 씁쓸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때만큼은 카린의 여우 같은 솔직함, 속물 같은 웃음, 센 척, 쿨한 척이 멋져 보였다. 아무라도 붙잡아 곁에 두고 싶은 그 마음, 그렇게 엇나가는 솔직하면서도 선을 넘는 말과 행동. 충동적이면서도 신경질적인 말투.


그건 내가 종종 그렇게 대해야 할 사람에게는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분풀이처럼 내뱉게 되어 지독하게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말투라 불편했을지도. 늘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에게는 이기적으로 굴고,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에게는 쩔쩔매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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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지만, 잠시 진심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것은 꽤 짜릿하고 즐거운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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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물구나무로 헤어지는 장면.

아, 좋은 이별이다. 싶었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이 슬프지 않을 수는 없지만 유쾌할 수는 있구나.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고,

여러모로 인생이 엉망진창일 때


극 T 성향의 귀여운? 아재 고양이 요괴가

뭔가 해결해주진 않지만

일단 뭔가 하긴 합니다...


요리라든가

안마 아르바이트라든가

오토바이 운전이라든가

지옥문 오픈이라든가


그게 뭐든, 어떻게든 위로받으면 된 거 아닌가!

카린, 이제 앙주와 오래오래 행복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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